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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Jun 15. 2022

녹음의 전성

녹음이 전성일 때는 봄이 아니라 여름이야. 그때 네가 말했던 걸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했다. 너 없이 봄을 나고 여름이 되어보니까 푸르른 건 역시 여름이 어울린다. 봄볕을 쬐고 숨으로 들이마신 것들이 작물에 가장 많이 응집되는 시기가 초여름이니까. 아무튼 나는 산과 숲으로 둘러싸인 동네를 걷다가 네 목소리를 생각하게 되었다. 편견을 깨 주었던 목소리를.     


전공과목 중에 재료가 깨지거나 늘어나는 것처럼 여러 성질을 연구하는 역학이 있었다. 거기에는 전성(Malleability)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압축했을 때 변형되는 특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게 높으면 아무리 눌러도 부러지거나 깨지지 않고 얇게 펴지는 거지. 구리로 만들어진 동전을 롤러로 세게 밀면 표면적은 넓어지고, 두께는 얇아지는 것과 같다.      


하나 더, 재료역학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개념 중에 응력집중이라는 것도 있다. 특정 지점에 힘이 쏠리는 현상. 이것은 어떤 물질에 압력을 줬을 때 비죽 튀어나온 부분이나 구멍 뚫린 부분 근처에 압력이 집중되는 현상을 뜻한다. 대개 그 부분이 파단되는 경우가 잦기 때문에 해당 역학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개념이 되었다.     

 

다분히 공학적인 개념들이라 생소할 수 있지만 내게는 이것을 설명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 궁상맞다는 걸 알면서도 잊지 못해서 너를 떠올린 거라든가, 유독 네 흔적이 선명하게 보이는 바람에 어느 날의 기억을 무방비하게 회상해버린 거라든가. 그런 것들이 너를 역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 생을 이루는 것 중에 전성이 가장 높은 거, 아픈 구석을 교묘하게 찔러 기어코 나를 무너뜨리는 거. 너는 꼭 그런 식으로 내게 다가오곤 하였다.      


녹음이 전성일 때는 여름, 나는 오늘 동네를 걷다가 듣고 싶은 목소리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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