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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Jun 21. 2022

단상 22 대아아파트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에는 빌라 가운데 낡은 아파트가 우뚝 서 있다. 와우산로 33길과 35길을 양쪽에 끼고, 44세대가 사는 곳. 이 아파트는 97년도에 지어진 주거용 건물이다. 대뜸 대아아파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아파트라 불리면서도 한 동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한 동뿐인 아파트. 그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근현대 흔적 남기기 사업이 언급될 수 있다. 재개발로 사라지는 6-70년대 주거 공간을 근현대 유산으로 보존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사업이었는데 18년도에는 서울 서초구의 반포주공 1단지, 강남구의 개포주공 1단지와 4단지 그리고 잠실 주공 5단지가 그 대상으로 선별되었다. 몇몇 언론이 기삿거리로 다룬 기록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이 사업을 두고 두 가지 관점이 발현되었다. 하나는 단순히 콘크리트 아파트가 문화유산이 될 수 있는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가였고. 다른 하나는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연탄아궁이가 달린 아파트이기 때문에 유의미하다. 게다가 모조리 없애버리면 우리가 한 시절에 살았던 생활상을 영영 잃을 것이다, 라는 우려가 있었다. 사업은 21년도까지 진행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의 역사 한 지면에 역대 시장으로 소개되는 사람이 교체된 뒤 전격 중단되었지만. 18년도에 기록된 주민들은 이를 문화재라 지칭하는 의견이 대다수였고, 21년도에 기록된 이들 대다수는 주택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는 말과 함께 그것은 흉물일 뿐이라 집값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하였다.      


서교동 대아아파트가 그 사업의 일환으로 탄생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유추할 수 있는 정황이 여럿 있다. 여태껏 주민들이 거주해왔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남은 것은 아닐 것이라는 추측. 가장 유력한 증거로 강남구 개포주공 1단지 15동 아파트에는 철제 가림막이 둘러쳐져 있고, 대아아파트 주변에는 와우산로 뿐이라는 거.      


나는 44세대가 사는 아파트, 와우산로 33길과 35길에 둘러싸인 아파트, 근현대 흔적으로는 지정되지 않았지만 한 동뿐인 대아아파트를 보았고, 기록이 내포하는 것들에 대해 좀 곱씹었다. 생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것과 중요한 것을 구분하는 일이 갈수록 녹록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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