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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Jun 06. 2022

단상 21

1.

아침부터 내린 비는 텃밭을 적셨고, 논에 물을 채웠다. 작물은 자신의 녹음을 더 푸르게 보이도록 애를 쓰고는 바람에 몸을 떨었다.

 

2.

걸어서 십 분 거리에는 이 동네의 유일한 카페가 있다. 논과 논을 양옆으로 낀 곳. 주인장은 목공소를 같이 운영했는데 매장 곳곳에는 곱게 다듬어진 도마, 손수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책상과 의자 그리고 부엉이 모양의 목공예품이 놓여있었다.

내부에는 동네 어르신 열댓 명이 앉아있었다. 그들은 시 기초의원으로 당선된 사람들의 이름을 거리낌 없이 남발했다. 당선자들이 내건 공약, 정당이 내세우는 정책 기조, 과거사와 인간성, 지난했던 성과, 무엇보다 그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설파하느라 핏대를 세웠다. 영락없다, 고 나는 생각했다. 분명 객체는 하나인 문장들. 각자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재해석을 거치면 영 다른 모양새가 되어있는 언어들이 그들 사이를 목적지 없이 배회했다.      


3.

그들은 챙 위에 월계수가 수놓아진 모자를 쓰고 있었다. 월계수는 지중해를 원산지로 두는 상록수인데 사시사철 푸르다는 것과 정화력 덕분에 승리, 영예의 상징이 되었다. 그 때문에 고대 로마의 전승 장군이나 대시인에게 관의 형태로 주어지고는 했다. 오늘은 6월 6일이고, 저들이 저 모자를 쓰고 있다는 사실은... 잠시나마 선입견으로 그들을 바라본 나를 직시하게 했다. 그들이 지나온 길을 제쳐두고 쉽게 속단하고야 마는, 이해를 시도하기도 전에 판단부터 해버리는 성정을.      


4.

우리는 겉모습에 자주 속는다. 보이는 대로 속단하거나 심지어는 미워하기까지 한다. 나는 그것을 유념하기로 마음먹었으면서도 쉽지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았다. 저편의 논에서 개구리들은 우느라, 지렁이들은 땅으로 파고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는 금세 그들을 쫓아가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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