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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Jun 02. 2022

단상 20

수유 작업실까지 차를 몰고 왔어. 원고 마감도 하고 청소도 할 겸. 간만이지. 둘이 널찍이 앉을 수 있는 책상에 혼자 앉아서 노트북을 열었다. 커피도 내려뒀고. 모든 것이 준비됐어. 나름 있어 보이게. 그런데 왜인지 허무하다. 자판만 누르면 되는데 손끝이 자꾸만 멈칫하는 거야. 그렇지. 여긴 아직도 네 발자국이 남아있다. 눈길 닿는 면면마다 그게 너무 깊숙이 찍혀있는 바람에 나는 얼마간 처절해졌다. 그러고 보니 오는 길에도 그랬지. 동부간선로를 타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최단거리, 최소시간, 무료도로. 아무리 눌러봐도 경로에 없었던 거지. 우리가 온 창을 열어놓고 달렸던 도로 이름이. 참, 황망했다. 생각에서 끝나버린 게. 음, 그런데 말이야. 어쩌면 창으로 비집고 들어온 바람한테서 네 냄새가 났던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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