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가끔 짜증나게 굴지만, 호르몬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10시경 일어난다. 반쯤은 일어나기 싫고 반쯤은 세상 돌아간다는 걸 파악한다는 명목으로 다음 뉴스와 커뮤니티를 느릿느릿 훑는다. 그러다 비척비척 짐을 챙겨 기어가듯이 가는 곳이 바로 야외 운동장이다.
사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심해지기 전에는 스피닝을 등록하려 헬스장을 찾았다. 스피닝은 딱 2번 할 수 있었다(소질 있다고 칭찬받았다). 그 후로 바로 단체운동 자제 정부 요청이 떨어져서 스피닝 수업이 1달간 중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 헬스클럽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8분짜리 경제 영상을 보며 준비운동 겸 사이클을 돌리고 근력 운동을 하고 아이돌 영상을 보며 20분을 뛰다가 내려오고, 퇴사해서 한가하니 반신욕기에서 몸 지지고. 가끔 스피닝 강사님이 오셔서 들썩들썩 스피닝 연습하시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러다 헬스클럽도 자제령을 받고 휴식을 선언했다…. 결국 찾은 곳이 동네 뒷산 운동장이었다. 어째 점점 가성비를 찾아가는 것 같다.
(당연히 나라의 코로나19 대비책을 준수한다. 운동할 때에는 계속 마스크를 끼고 있고, 사람들과는 최대한 거리를 두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운동하는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동네 뒷산 운동장은 말 그대로 '산'이기 때문에 올라가는 데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헬스클럽에서는 준비운동이 필요했는데, 뒷산 운동장은… 이 정도 높은 산을 오르고 나면 준비운동이 필요할까 싶을 정도다.
플레이리스트에는 총 5곡을 세팅한다. 헬스클럽에서 확인해본 결과 곡의 셀렉에 따라서 18분~20분 정도의 운동시간이 된다. 사실 좀 짧나 싶기도 한데, 막상 해 보면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다. 약 1곡 반 정도까지는 아직도 몸에 권태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데, 5곡 뛰고 나면 그냥 정신이 없다. 힘들어서 물 마시지 않으면 일 더하기 일을 물어봐도 생수 있으세요 라고 대답할 지경이다.
잠깐 앉아서 바람을 쐰다. 이제 막 정오를 넘긴 시간, 햇빛이 쨍쨍하게 운동장을 비춘다. 그렇게 햇빛을 쐬다 보면 왜 운동이 우울증에 최고의 처방인지 알 수 있게 된다.
달리기에는 여러 가지 효능이 있다. 여기에서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
1. 심장 건강에 아주 좋다. 부정맥이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 필수다.
2. 암 발병 가능성을 낮춰준다. 사실 비만을 예방하면서 딸려오는 부수적인 효과인 것 같다.
3. 두뇌를 깊이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노르에피네프린' 수치를 증가시키면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집중력을 높여주는 것이다.
4. 정신 건강. 스트레스 호르몬은 줄고, 엔도르핀 수치는 증가하고, 특히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세로토닌 호르몬 수치가 증가한다. 또 정신적 고통을 받을 때 나오는 '카이뉴레인' 수치를 낮춰주기도 한단다.
5. 불면증 해소. 규칙적인 운동은 규칙적인 수면 패턴과 연결된다.
특히 나에게는 4번, 5번이 중요하다. 천성적으로 기질이 불안한 편인데, 약을 먹는 것보다 운동을 하는 게 훨씬 효과가 좋다는 걸 이제는 안다.
운동을 하면 운동을 모르고 살았던 지난날이 아쉬워진다. 그때의 24시간과 지금의 24시간이 절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일상 속의 공기와 물과 책과 글자가 한층 더 생생하고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을 모두가 겪었으면 좋겠다. 체중감량은 차라리 부차적이다(물론 중요하긴 하지만). 내가 나의 힘으로 나의 삶을 즉각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킨다는 고양감을 꼭 겪어봤으면 좋겠다. 호르몬은 확실하다.
내가 퇴사 이후의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고 있다면, 그것은 모두 운동 덕분이다. 그다음은 식단. 그다음은 공부. 모두 긍정적인 자기 고양감과 관련 있는 항목들이다. 자신이 가진 것보다 자신을 높게 평가하게 만드는 기제는 자신감을 높이고, 그렇게 올라간 자신감이 실제로 삶을 더 낫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 않나.
결국 삶을 낫게 만드는 방법들은 이렇게 단순하다. 하지만 직접 실천해보기 전에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모른다. 나도 그랬다. 이제는 안다.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