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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 Jan 08. 2021

펄펄 눈이 옵니다

출근길 걱정은 접어두고...

‘펄펄 눈이 옵니다. 하늘에서 눈이 옵니다.’


동요 가사에서 많이 들어는 봤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는, 눈이 진짜 펄펄 오는 모습. 이렇게 내리는 눈을 보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하도 촘촘히 눈이 와 뿌예진, 창문 너머 남색 밤하늘을 바라보다 밑으로 시선을 옮겼다. 단지들 사이 주차장에 신이 난 아이들이 보다. 태어나 겨우 두번째로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우리 오빈이 당연히 이런 눈본 적이 없다. 하루 종일 두 아이를 보느라 지쳤고, 출산 후 처음 시작한 생리로 평소보다도 몸이 무거웠지만, 저울은 오빈이에게 눈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쪽으로 기운다. 직장에서 퇴근하자마자 아이들과 노느라 나만큼이나 몸이 무거운 남편도 자리에서 일어선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우주복을 입은 오빈이가 집안 여기저기를 다니며 말한다.


“눈. 보러 갈 거예요!”


며칠 전 편의점에 간 이후로 신발을 신는 것도 오랜만이다. 안 그래도 겨울에는 아이를 돌보는 입장에 외출이 어려운데 코로나 확진자수가 1000명대로 올라간 뒤로는 올드보이가 따로 없다. 유일한 외출이었던 바깥 산책마저, 따뜻한 낮 시간에는 둘째를 맡길 어른이 없러모로 외출이 어려운 요즘이다. 


오빈이는 1층 문 앞에서 밖으로 나가기도 전에 난간에 있는 눈들을 쓸어보며 이미 신이 났다. 장갑에는 눈이 다닥다닥 붙어서 손이 시릴 법도 한데 몇 번이고 만져도 신기하다는 듯이 눈을 잡는다.


주차되어있는 차들 위 눈들을 뭉쳐 서로 던지는 아이들부터, 눈사람을 만들었다고 사진 찍어 보내는 학생들까지 오랜만에 집 앞에는 활기가 돈다. 빨간색, 초록색촌스러운 형광빛 플라스틱 썰매도 등장했다.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 지상주차장,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서도 아빠들은 열심히 썰매를 끌고, 아이들은 걷는 것보다 겨우 조금 더 빠른 썰매 위에서도 신이 났다. 우리 남편도 오빈이썰매 태워주고 싶다집으로 다시 올라다. 폐휴지로 모아둔 박스만 겨우 가져올 줄 알았더니 박스에 테이프를 칭칭 감고 돗자리까지 깔아 들고 온다. 박스에 탄 오빈이가 엉덩이를 들썩이며 외친다.

“이 쪽! 아니 아니  쪽!” 


그 와중에 늦둥이 남동생은 학원에 슬리퍼를 신고 갔다. 얇디얇은 발목양말 슬리퍼 차림으로 이 눈길을 어떻게 올지 싶었다. (중학생이란 자고로 겨울에 운동화를 신거나 털신을 신으면 쿨하지 못한 것이다. 당연히 발목을 덮는 양말은 옷장에 있을 가 없다.) 우리가 돌아오고도 한참 뒤에 돌아온 동생은 친구들과 가위바위보를 해서 눈 위를 맨발로 걷고, 몸을 던져 데굴데굴 굴렀단다. 이유가 추워서인지 신나서인지 모를 상기된 빨간 볼을 두 손으로 감싸며 말한다. 


아까 뛰놀던 아이들과 오빈이도, 중학생 동생도 괜히 짠하다. 친구들과 만나고, 귀찮다면서도 학교에 가는 일상에 대한 그리움이 자기도 모르는 마음 사이에 숨어있겠지.


오늘의 이 폭설로 내일 아침 많은 이들이 출근길을 좀 더 일찍 나서야겠지만, 아이들에게만큼은 확실한 위로가 된 듯하다. 그것을 알기에 차에 쌓인 눈을 털러 온 아저씨도, 도보의 눈을 쓰는 경비아저씨도, 총총걸음으로 퇴근하는 아주머니도 빙긋이 웃음을 지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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