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수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윈픽스의 빗치 Aug 21. 2021

화장

2019.06.14. / 2019.07.01.

2019.6.14.


 나는 스모키 메이크업을 굉장히 즐긴다.

 색깔 몇 개 칠했을 뿐인데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인상과 분위기가 재미나다.

 굉장히 단순하고 캐주얼한 옷을 입고난 뒤, 눈가만 조금 어둡게 칠해도 차림새가 화려해진다. 느낌에 변화를 주고 싶다면 스모키 메이크업만큼 간단하고 확실한 게 없다.


 스모키 메이크업을 즐겨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시커먼 눈가가 생각보다 나에게 잘 어울려서다.

 쌍꺼풀이 없는 내 눈의 특성상, 아침에 거울을 보면 그 안에 웬 꺼벙하고 초췌한 30세 여성이 서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스모키 메이크업을 하면 갑자기 또렷하고 매사에 당당할 것 같고 생기도 넘치는 그런,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이미지의 여성으로 탈바꿈한다.


 나무위키에 스모키 메이크업을 검색하면 ‘여자가 다른 사람과 싸워야 하거나 환불하러 가야 할 때 전투용으로’ 이 화장을 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실제로 그렇다. 밋밋하고 허여멀건 내 진짜 얼굴로 밖에 나가면 뭔가 전투력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그냥 느낌일 뿐이라고 생각하기에는 n년간 겪어 온 ‘화장 유무와 타인의 태도 변화’가 너무나 확연히 차이가 난다. 다른 사람이 괜히 시비를 걸거나 예의를 지키지 않는 빈도가 확연히 줄어든다. 그래서 바쁜 출근길에는 민낯으로 오다가도, 일을 시작하는 오전 9시 전에 화장을 하고 자리에 앉아 업무를 본다. 든든한 갑옷을 입은 느낌이다. 외부 사람을 만나 미팅을 할 때 더욱 든든하다.


 그런데 화장을 하고 오래 있으면 마스카라의 무거움과 눈을 긁지 못하는 답답함에 머리가 아파오기도 한다. 그러면 전투력이고 뭐고 아무 것도 얼굴에 걸치지 않고 민낯으로 돌아가고 싶어 진다.


 늘 고민이다.




2019.7.1.


 화장기가 없는 얼굴들을 보면 마음이 편안하다.

 도자기처럼 매끈한 피부보다 점이 보이고 기미와 주근깨가 그대로 드러나는 얼굴이 더 좋다. 마음껏 표정을 지어보이고, 눈이 가려우면 손을 들어 언제든 쓱쓱 비빌 수 있는, 그 자연스러운 얼굴이 나를 기분 좋게 만든다.


 나는 화장을 하는 것도 무척 좋아한다.

 맨 얼굴로 집 밖에 나섰다가도 기분이 내키면 얼른 눈 화장을 해 버린다. 그도 그럴 것이 내 화장이라고 해 봐야 썬크림 위에다 아이섀도만 덧칠하는 수준이어서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다이나믹(?)하게 새로운 느낌으로 연출된 얼굴에 굉장히 만족하다가도, 변덕스럽게 화장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이 온다. 바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화장기 없는 다른 누군가의 얼굴과 대면할 때다. 그 자연스러움과 어딘지 모를 따뜻함이 그 얼굴을 동경하게 만든다.


 오히려 아무런 색조도 입히지 않은 얼굴에서 더 큰 자신감이 엿보인다. 예뻐지려고 칠한 짙은 색 아이섀도가 왠지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나를 숨기려 하는 것 같아서 괜히 부끄러워 진다.


 오늘도 화장기 없이 말간 얼굴과 마주했다. 나도 모르게 자꾸 눈이 갔다. 남자와 여자의 경계 그 어디쯤 있을 법한 얼굴이 매력 있었다.

 아마 나는 내일 아침도 그 얼굴과 마찬가지로 말간 채 외출했다가, 어느 순간 거울 속 내가 초라해 보인다며 눈두덩이에 색깔을 칠할 것이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게 익숙하지 않은가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예쁘다는 판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