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살장 벽이 유리로 돼 있으면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되리라는 폴 매카트니의 말은 유명하지만, 이 책은 세상이 그렇게 나이브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완독했거나, 들춰봤거나, 검색해 본 대부분의 비건 관련 책들은 소위 '비건 교과서'라고 할 만한 책들의 내용을 거의 답습하고 있었다. 동물 고문, 착취, 학살과 같은 윤리적 문제를 잔뜩 지적한 후 환경오염 및 인간 건강 위협에 관한 내용 조금 첨가. 그 책들의 주제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인간이 동물에게 얼마나 잔인한 짓을 하고 있는지 알면 모두가 비건이 될텐데'였다.
'비건 세상 만들기'는 동어반복을 하지 않는다. 이 책에 따르면 흑인노예제도 폐지, 상업 포경 중단, 투우 금지는 도덕적 깨달음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인간의 본성이 '결과적으로는 도덕적인' 변화를 만들어 냈다.
6년 전쯤 내가 채식에 실패했던 것은 채식을 시작하게 한 원동력이 100% 도덕적 책임감과 죄책감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개 한 명의 인간인 나에게 그것은 너무나도 숭고한, 완벽히 이타적인 동기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동기가 윤리적일 때 비건 지속 확률이 높다고 말하고 있지만.)
지금 다시 비건 지향을 결심한 것은 50%가 윤리적 책임과 동물권 보호에 대한 의무감이고, 나머지 50%는 항생제와 병균으로 오염된 쓰레기가 아닌 건강한 음식을 먹고 싶다는 개인적 이익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것을 두고 완벽하지 못하다고 손가락질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이번 시도가 꼭 성공할 것만 같다.
이 책은 비거니즘이 단순한 식생활에 관한 흐름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주의'로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보여주어 흥미로웠다. 마치 한반도에 들어온 사회주의를 두고 이런 저런 형태의 실천 및 확산 방안을 궁리하고 때로는 갈라져 다투기도 했던 카프의 논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