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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젤라권 Jul 15. 2021

글을 쓰지 않는 이유

이유라 쓰고 변명이라 읽는다.

https://brunch.co.kr/@angellakwon/93


위에 링크를 걸어놓은 글처럼,

동갑내기 새언니인 그녀가 카카오스토리에 올리는 조카들의 단편적인 일상을 담은 글들은 빠짐없이 소중했다.

그녀의 눈과 가슴을 거쳐 글로 만나는 조카들의 일상 단편은 나를 미소 짓게 하고, 웃게 하고, 뭉클하게 하고, 눈물짓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길지 않은 담백한 글 안에는 길이와 상관없이 많은 내용과 감정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녀가 더 자주 더 오래 글을 써 주길 바랬지만,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되면서 더 이상 그녀의 글을 볼 수 없었다.

당시 많이 아쉽긴 했지만 그 이유를 물어보지도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오늘, 그냥 문득, 아무 이유 없이, 나는 요즘의 일상을 되돌아보며 '내가 글을 쓰지 않는 이유'를, '나름 그럴듯한 변명'을 찾아냈다.

나의 머릿속은 상황상황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의 감정과 감동과 떠오르는 문장들은 너저분한 메모로 핸드폰에 남아 있지만, 몇 달째 다양한 이유를 만들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글을 쓰는 시간을 최대한 미루고 있었다.

나름 타당한(?) 모든 이유들이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안다. 뭔가를 하지 않으면 느껴지는 원인불명 죄책감을 중화시키고자 나는 모든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찾아서 하고, 시간을 최대한 늘려서 쓰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집수리와 리모델링에 수개월을 보냈고, 미루고 미뤘던 치과치료를 한 달간의 긴 여정으로 마무리지었으며, 온라인으로나마 축제에 참여하고 있고, 성사될지는 모르나 여러 루트에서 제안을 받고 있는 작품 구상을 느릿느릿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이유들은 나에게 '나름 그럴듯한 변명'이 되어주지 못한다.


나는 수년 전 그녀가 글을 올리지 않았던 이유를 '오늘, 그냥 문득, 아무 이유 없이' 요즘의 나의 일상에 비추어 추론하게 되었다. '이타적인 그녀는 그녀만의 시간을 쓰는 대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추억으로 채워지는 시간을 선택한 것 같다'는 생각... 그녀의 시간은 온전히 가족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엄마인 그녀는 행복해 보인다.


요즘의 나는 반려인과 보내는 시간이 많다. 코로나 이전의 내가 '나는 할 일이 있으니 이만 자리를 뜨겠소'라고 머릿속에서 말을 걸어올 때에도 지금의 나는 자주 그의 옆에 남아 있는 쪽을 택한다.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함께 하는 모든 시간에 가치를 부여한다. 그렇게 감사함을 느끼고, 다행이라 생각하며, 같이 웃을 수 있는 시간을 늘려가고 함께 하는 순간을 저장한다.


개인의 삶보다 일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며, 일을 무기 삼아 방패 삼아 자존감을 한껏 올리고 살아온 긴 시간 속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생산성과 효율성 없는 일상을 진심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는다. 지금의 나는 '그렇다'고 답하지만 그 대답에 몇 프로의 진정성과 힘이 실려있는지 아직은 모르겠다.

나의 일이 나라는 사람을 정의하는가. 

25년간 내가 해 온 일만이 나의 가치를 평가하는가. 

바쁘지 않다고, 시간이 있다고 말하는 게 창피한가.


수십 년 동안 관심 없던 청소를 하면서 쓸데없이 끝을 보고 싶어 하는 나에게, 설거지를 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배수관까지 깨끗하게 닦고 싶은 나에게, 모든 옷장의 옷을 다 꺼내서 종류별로 분류하고 싶어 하는 나에게, 나는 요즘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한다. 

완벽의 기준은 모호하고... 그러므로 완벽이란 불가능하다. 

소소할지라도 생산성과 효율성 있는 하루를 만들어 스스로 면죄부를 주고 싶어 하는 나에게 오늘의 나는 쿨함을 코스프레하며 'So what?'을 날린다. 명분을 위한 명분은 필요 없다.


내가 글을 쓰지 않았던 이유는... 오늘은 그럴듯해 보이는 변명은...

나의 친구이자 새언니인 그녀처럼, 나도 나만을 위한 시간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추억으로 채워지는 시간을 선택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이라고... 억지를 부려본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온전히 집중해 보려 노력하고 있으며, 그 결과 '편안해 보인다. 건강해 보인다. 행복해 보인다.'는 말을 듣고 있으니 일이라는 무기와 방패를 걷어내고도 꽤나 가치 있는 일상을 살아간다는 생각에 힘을 실어보려 한다.

누구나 아는 진실은 게으름일지라도...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넋두리처럼 적어 '발행'을 누르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다시 읽고 퇴고를 시작하면 아마 이 글도 서랍 속에 남아있는 글 중의 하나가 될 것 같기에...

용기를 낸 오늘의 나는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으며 그저 의식에 흐름대로 써 내려가고 있는 이 글의 '발행'을 지금 누르려 한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내가 맘에 들지 않을 것 같고, 오늘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라도 글쓰기를 다시 시작해 보면 어떨까.

스스로에게 관대해져야 스스로 가치 없다 판단하는 단편적인 생각도 써 나갈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by Angella 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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