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il Jan 17. 2024

<구> 파트장님께

연필과 편지 _ 친애와 존경을 담아


<구> 파트장님이 신파트장님일 때가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그때만 해도 회사가 아직 구식이었던지라 부서 이동 당사자가 짐을 챙겨 옮기는 구조였기에 우리는 제가 일하는 건물 1층 보안검색대 앞에서 구면 같은 초면인 채로 조금 낯부끄러운 인사를 나누게 되었지요.


인사를 나누었다기보다는 쨉을 날리듯 <구> 파트장님께 발칙한 인사를 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이런 누추한 곳에, 귀하신 분이... 어떻게 한 번 안아봐도 될까요?" 그때 파트장님의 머쓱한 눈과 살짝 올라갈 듯 말듯한 입꼬리를 단속하는 모양새를 보고서 저는 우리가 꽤 합이 잘 맞는 상하관계가 될 것이라고 예감했습니다.


사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참 실례가 되는 첫인사였습니다. 안아봐도 되겠냐니요... 네, 저도 압니다. 마음이 반가우면 신은 줄도 모른 버선발로 상대를 향해 깡충깡충 뛰어가는 마음이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는 것을요. 파트장님을 따라 이사를 도왔던 회사동생과 또 다른 동료분에게는 ‘그만 돌아가라’며 냉정히 대했던 것도 기억납니다. 그 때문에 전과 다른 저의 모습을 본 동생으로부터 한동안 놀림을 받았습니다만, 저는 스스로를 의심하거나 단속지 않고 마음이 생각해 낸 말들을 뇌의 필터 없이 쏟아내고야 말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가 지금의 파트로 옮기고 만난 상사들은 눈곱을 달고 술에 취해 출근해 근무시간에 코를 골고 딥슬립하던 이, 구성원과 이야기하며 방귀와 트림을 아무렇지 않게 발사하던 이, 금전대차 문제로 회사를 그만둔 이, 막무가내에 목소리만 크고 냄새가 나던 이, 말실수로 직에서 내려간 이까지 더하면 합이 다섯이었습니다. 파트를 버리고자 본부에서 사주한 것이 아니라면 그 옛날 예능에서나 보던 x맨이 너무나도 많지 않습니까? 그러니, 만나자마자 안구 정화가 될 것 같은 훈훈한 외모와 프레시한 향을 풍기는 사람이 '우리 파트장이라니?' 요즘말로 정말이지 개꿀, 개이득이었습니다.  ˃̵ࡇ˂̵


그러니까, 그게 벌써 4년 전입니다. 지난 4년간 변치 않은 것이 있었다면, 세월도 거스르는 파트장님의 잘생긴 외모정도겠네요. 잘생겨서 그런 걸까요? 파트장님은 제가 아는 어떤 사람보다 변덕스럽기가 어휴, ʘ̥_ʘ


덕분에, 어떤 때에는 도시 한가운데서 유유자적 대관람차를 타는 기분이었고 또 어떤 때는 디스코 팡팡에 흡신 두들겨 맞아 얼얼한 엉덩이를 감싸 쥐고 식식거리던 날들이었습니다. 가끔은 <구> 파트장님의 변덕과 욱함에 질색하기도 했지만, 저 또한 자초한 구석이 있었던 점 이제와 인정하는 바입니다. 모름지기 사람이란 코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드가 맞다면, 찰나의 스파크가 일어도 잠재울 비범한 능력 한 두 개쯤은 호주머니에 찔러 넣고 '짠'하며 손바닥을 펼칠 수 있으며, 그런 순간의 유치함을 받아줄 수 있는 '아량'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야 말로 진정으로 같은 코드의 성질을 지닌 사람들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짝'하면 '쿵'하는 사람들, 어릴 적 책상 사이에 금을 긋고, 식식거리다가도 아무렇지 않게 허물던 짝꿍 같은 사이가 아니었을까요? 망각주를 한 사발 드링킹 한 저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파트장님이 ‘구성원, 내 얘기도 들어봐야지?’ 한다면… 모른 척 넘기겠습니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요. ⚆_⚆;


어쨌거나 그런 <구> 파트장님을 보내고 (신) 파트장님을 맞으며 '그때 정말 좋았네'하며 과거로 돌아가 좋았던 시기 관통하고 나니 제게 그런 4년이 있었던가, 정신이 번쩍 들기보단 아득해집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요즘 겉돌고 있습니다. 구구절절 모든 걸 말할 수 없지만 (신) 파트장님이 모든 면에서 고구마를 100개를 먹어치운 듯 목 막히는 스타일이라는 것과 <구> 파트장님의 이동이 달갑지 않은 것에서 기인한 마음의 문제겠죠. 저는 윗분들이 하시는 일을 대체로 이해할 수 없지만, 이번 인사이동이야 말로 상당히 언짢아하고 있습니다. 이런 법이 어디 있냐며 드러눕고 싶은 심정인데, 저는 고작 <구> 파트장님과 통화하다 문득 슬퍼져 입술을 깨문다거나, 자주 추억에 잠긴다던가, 그 외 소소한(?) 진상짓을 한다거나 하는 정도의 용기만 갖고 태어난 지독한 내향인일 뿐입니다. 또한 오늘의 날씨만큼이나 투명한 사람인지라 저의 감정을 설명하지 않아도 어쩐지 비협조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어 (신) 파트장님 또한 저를 불편해하는 것이 역력하지만 뭐 어쩌겠어요? 그러라지요. 지금의 저는 저도 어쩔 수 없는걸요. (될 대로 돼라 -> 이건 속마음입니다)


<구> 파트장님이 있던 우리 파트는 제가 원했던 회사생활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소 까칠하지만 책임감 있고 때론 친구 같은 상사, 나이는 어리지만 젊꼰을 자처하는 막내들, 어중간하게 끼어 여기저기서 얻어터지기 좋은 중간이들까지 누가 뭐라 하든 '내 얘기 먼저' 들어 보라던 자기주장하기 바쁜 입들이 모인 이상하고 때론 징글징글하고 짠내 나던 파트의 분위기가 저는 좋았습니다. 딱 한 명 바뀌었을 뿐인데요. 굉장히 많은 것이 변한 것 같습니다.


저는 <구> 파트장님께 편지를 자주 썼습니다. 그것을 편지라고 내내 우기고 있지만, 사실 대놓고 <오늘의 사직서>라고 적힌 메모지에 쓴 하소연이었습니다. 보통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죠. '오늘도 파트장님 때문에 퇴사 생각을 했습니다'로 시작해 사직 이유와, 퇴사를 참아야 하는 이유, 날짜와 제 이름까지 야무지게 적고 나면 파트장님에 대한 미움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거든요. 이제는 그렇게나 좋아하는 편지, 아니 사직서도 주인을 잃었습니다. 네. 저도 압니다. 어떤 상사가 하루가 멀다 하고 부하 직원이 쓰는 사직서를 받아주겠습니까? (자주 콧방귀를 끼곤 하셨지만요) 그래서였다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구> 파트장님과 함께 지내는 동안 저는 저를 꽤나 귀여워했습니다. 제가 하는 말도 안 되는 행동들이 퍽 귀여웠거든요. 대체로 어이없어하시면서도 어휴, 하며 저의 투정을 받아주던 <구> 파트장님이 있어서였겠죠? 모든 걸 미화시키는 혼돈의 망각주를 또 한 번 드링킹 한 제가 다소 언짢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저라고 알았겠습니까? 제가 저를 귀여워할 줄… 덕분입니다. ❛ ڡ ❛ 헷.


저는 오늘도 아침부터 마음이 고단합니다. 사물함에는 쓰지 못한 새 사직서가 50장은 족히 남아있고요. 무엇보다 올해도 좀 귀엽고 싶은 욕망이 있거든요. 그러나 저의 현실은 사이다 없는 고구마뿐입니다. <구> 파트장님, 부디 그곳에서 하시는 일이 안정의 궤도에 오르면 저를 스카우트해 주세요. 어쩐지 그런 일은 일어날 것 같지 않지만 (아브라카다브라 -> 이 또한 속마음입니다)


파트장님… 지금 우리의 일상은 미지의 영역에 있습니다. 창 밖은 겨울이고, 지금 생각 같아선 봄은 아무래도 오지 않을 것만 같지만 또 모르죠. 미지(未知)란 본디 그런 것이니까요. 언젠가 또다시 외로움과 그리움이 제게로 와 노크를 할 때,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때 편지를 이어 쓰겠습니다. 그때까지 늙지 말아요. 그럼 이만 총총…



- 오늘도 친애와 존경을 담아, 팟장님께 구성원 드림.

매거진의 이전글 오직 편지만이 할 수 있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