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란 소설에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깊은 생각이라 불리는 컴퓨터는 750만 년 동안 연산한 후 42란 답을 내놓았다고 한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답을 내고 컴퓨터는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 원인이라고 부연설명을 해줬다. 답을 고민하는 데 걸린 시간이 750만 년. 그가 연산한 값은 42.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건 그저 헛웃음뿐.
종종 지역맘카페를 이용한다. 주로 어떤 장소가 궁금할 때 들어가는 편인데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대부분 질문들이다. " 이혼이 답일까요?"라는 심각한 질문부터 "초등영어학원 추천 바랍니다"와 같은 단순한 질문까지.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혹은 판단하기 애매한 문제들을 올리고 누군가에게 답을 구한다. 질문에 대한 답으로 달리는 댓글은 질문이 명확할수록 빨리, 그리고 많이 달린다. 하지만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문제나, 질문자체가 잘못된 글에 달리는 댓글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그 수도 적다.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질문들이 명확하다면 답을 구하기도 수월할 텐데. 삶이 주는 질문들은 대부분 복잡하고 모호하다. 그러니 질문하기 어렵고 한다 해도 답을 구할 수 없을 때가 훨씬 많다. 얼마 전 S언니는 좋은 마음으로 잘해주었던 K언니의 문제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이후로 K언니와 거리를 두려고 마음먹었지만, 좀처럼 쉽지 않다고 했다. 전과 같은 애정을 요구하는 K언니의 바람을 채우주기엔 S언니 마음의 균열이 너무 컸다. 시간이 지날수록 죄책감 때문에 힘들다는 S언니는 조언을 구했다. " 나 어떻게 해야 해?"
명확한 답을 줄 수 없었다. 그것은 마음의 문제였다. 두 사람의 마음을 내 것처럼 알 수 없기에 깊은 생각이란 이름의 컴퓨터만큼 오랜 시간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고 해서 답을 구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해서, 나는 " 언니 마음이 편한 대로~"라는 조금은 단순한 그리고 거리감 있는 답을 내놓았다. 이십 대 시절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은 이제 명확하게 해 줄 수 있다. "공부를 더 해볼까?"란 질문엔" 그래 늦지 않았어. 당장 시작해도 돼", "멀어진 친구에게 내가 먼저 연락해 볼까?라는 질문엔 " 망설이지 마, 더 이상 기회가 없을 수 있어"라는 답을 줄 수도 있다. 뼛속같이 체험한 시간들이 지난 후라서 그렇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또 무슨 일이 일어났어도 괜찮은지 다 알고 있으니 상황에 맞는 대답이 가능해진 거다. 그러나 아직 살아보지 못한 시간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미궁 속에 있다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이 문제이기나 한 것인가? 이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문제는 모든 것을 노력 없이 단번에 알아내겠다는 미련한 욕심의 표현에 불과하다. 마치 전혀 공부하지 않은 이가 침대에 빈둥거리며 누워 내일 시험에서 백 점 맞을 궁리를 하는 것처럼. 저 질문의 정답은 확실히 '42'이다. 그러나 질문을 자신의 삶에서 절실하게 피워내지 못한 이에게 질문은 추상적인 남의 질문이며, 따라서 해답 역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저 거대한 문제가 제대로 된 질문의 모습이 되기 위해선, 의미심장하게도 '지구'라는 컴퓨터가 자신의 장구한 전 역사를 조금도 건너뛰지 않고 하나하나 몸소 체험해야 했다.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 서동욱>
질문하기 위해서, 혹은 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도 그냥 건너뛰지 않고 하나하나 몸소 체험해야 한다. 내 인생의 질문들과 그에 합당한 답을 구하기 위해 나는 계속해서 살아가야 한다. 질문도 대답도 모두 내 안에 있다는 말. 누군가의 글이 보여주는 지름길이 그럴듯해 보여도 그 길 끝에 나의 답은 없다. 각자의 삶을 통해 질문하고 답을 구하는 게 전부. 똑같은 질문도 똑같은 대답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성공한 이들이 써 내려간 멋진 방법론을 맹목적으로 따라 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 모든 것을 노력 없이 단번에 알아내겠다는 미련한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지. 주어진 것을 사랑해야지. 오늘이라는 시간을 경험해야지 한다.
둘째 언니의 시골집은 봄이었다. 정원 여기저기 피어난 꽃은 아기자기했고, 부드럽게 다가와서 내 머리카락과 어깨와 볼을 어루만지는 바람이 따사로웠다. 빛을 받으며 언니와 나누는 담소.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바라보는 풀들. 세상이 고요하니 마음도 그를 닮아갔던 시간. 지금 행복하니? 란 추상적인 질문에 금방 답을 할 수 있었다. "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