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사주에 관심이 생겨 열심히 찾아가며 공부했다. 사주팔자에 나오는 오행의 의미와 십성, 신살, 지지충과 합, 천간의 합과 충같은 걸 찾아보며 내 사주와 남편, 아이들의 사주를 연구해 보고 분석했다. 그간 인생이 쉽지 않았기에 왜 나에게 그런 시련이 왔을까 하는 이유도 찾아보고, 우리 아이들의 앞날은 괜찮을까? 하는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열심히 여기저기 검색하고 유튜브를 시청하며 보낸 시간이 꽤 길었다. 호기심이 강한 편이라 알고 싶은 거 하나에 꽂히면 몇 날 며칠을 거기서 헤매곤 하기에 들어야 할 강의와 읽어야 할 책들의 진도가 느릿느릿하게 흘러갈 정도였다. 이제 그만하자 하면서도 새로운 내용이 나오면 또 정신을 못 차렸다. 그렇지만 대부분일에 끝이 흐지부지라 이번에도 사주와 끝장나는 싸움을 하지 못하고 서서히 흥미를 잃어가는 중이다. 어쩌면 그게 다행이다. 사주란 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일이 아니라서 나는 자꾸만 미래를 혹은 먼 과거를 들여다보며 현재라는 시간을 써버렸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이유를 찾아내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일들을 가늠하며 시간을 쓰고 나면 머리가 아팠다. 뭔가 알아냈다는 깨달음도 아주 잠깐 찾아왔지만, 이내 그래서? 어떻게 하지? 란 질문에 알맞은 답은 없었다.
그러다 어제 오랜만에 지금에 몰입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다 한강 작가 덕분이었다. 그녀의 소설 <여수의 사랑>을 빌려온 지 2주가 흐르고 반납일이 되어 도서관에 가야 했던 바로 전날 밤. 무심히 펼쳤던 책이 너무 재밌어서 그 세계로 홀라당 넘어가고 말았던 거다. 다음 날은 아침부터 그녀의 책과 시간을 보냈는데 두 시간 넘게 계속되는 독서에도 지루함이 없었다. 간신히 찾아온 몰입의 시간이었다. 덕분에 찾아온 독서의 날개가 순조롭게 펄럭인다. <여수의 사랑>을 완독하고 박웅현의 <책과 삶에 대한 짧은 문답> 집을 읽고 있다. 그리고 오늘 이거다 싶은 문장을 발견했다.
아하 점, 이하 선이 0에 맞춰져 있는 사람은 매일 산소를 달게 마시는 사람일 겁니다. 이 사실을 자주 기억하려고 해요. 책에 쓴 것처럼 남은 생애 동안 산소를 달게 마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아하 점, 이하 선을 0에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아하!"하고 감탄하는 순간을 늘리고 싶어요. 일상에서 그런 순간이 늘어나는 것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책과 삶에 관한 짧은 문답, 박웅현*인티 N>
아하~하고 감탄하는 감정의 선을 0점에 맞추고, 별 것 아닌 일에도 감사하고 감탄하는 순간을 늘리는 것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말씀이다. 어린 시절엔 행복이 찾아오는 건 줄 알았다. 기다리고 기다리면 나도 행복해지는 날이 올 거야란 희망을 품고 청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고 중년의 여성이 되고 보니, 행복이 그리 대단해 보이진 않는다. 왜 그토록 오랜 시간 행복을 기다렸을까? 하는 질문만 남았을 뿐. 내가 웃고 있던 모든 순간에 행복이 있었고, 내가 슬피 울었던 순간 역시 다음번 행복을 위한 디딤돌이었다는 사실들은 지나고 나니 보였다. 게다가 거창해 보였던 행복이 단순하고 소소해지자 행복할 수 있는 순간도 점점 늘어났다.
아쉽게도 작가의 문장과 나의 개인적인 깨달음을 얻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조금은 아프고 괴로운 시간을 오래 보내야 할지도 모르고, 지루하고 나른한 일상을 버텨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긴 시간을 보내고 나면, 자잘한 일에 대한 기쁨을 알게 된다.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발견한 집안의 파랑새처럼. 행복이 언제나 곁에 있었다는 상투적인 깨달음도 얻게 된다. 인생이 태양처럼 찬란하진 않지만, 밤하늘의 별처럼 작고 소박하게 빛나는 날들의 연속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게 된다. 십 대 이후로 20년 정도의 값을 치러낸다면 혹은 계속 행복에 대해 질문하는 노력을 버리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사주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흐름으로 인간의 삶을 이야기한다. 계절이 순환하며 세상이 변하듯이 인간 역시 그런 흐름에 맞게 때때로 봄날처럼 화사해지다가 뜨거운 여름처럼 열정에 빠지다가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가을처럼 익어가고 마침내 추운 겨울을 맞이해 인생의 끝으로 향했다. 물론 계절의 시작은 사람마다 달랐다. 다만 계절의 순환이 이어진다는 건 누구의 삶도 평탄하게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니 아하의 점을 0점으로 맞추자. 지금 만발한 벚꽃에 기뻐하고 봄이 펼치는 강인한 생명의 합창을 마음껏 보고 웃자. 그것이 자기가 가지고 태어난 사주팔자를 유용하게 쓰는 방법이며 팔자가 정해 논 듯한 고통을 이겨낼 유일한 해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