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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사라지지 않게, 세계를 붙잡아 둔다.

by 쓰는 사람 효주

요즘 가수들 노래가 들리지 않는다. 이제 약해진 청력 때문에 노래 가사가 잘 안 들리는 것도 원인이겠지만, 노래 가사말이 한글이 아니라 영어로 돼 있다는 것도 한몫하는 중이다. 글로벌 시대에 맞춰,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한류의 흐름에 따라 가사를 영어로 하는 것이 가수들에겐 더 이익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한국은 급속도로 작아지는 중이니 그 안에서 아무리 인기 있어봤자 세계무대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에 비하면 하잘것없을 테니까. 그런데 가끔은 아쉽다. 요즘 젊은 그룹들의 노랫말을 내가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는 사실과 도저히 따라 부를 수 없을 만큼 빠른 영어 가사말이 그들과 나 사이에 커다란 벽처럼 느껴져서다. 언어가 통하지 않은 낯선 외국인처럼.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다른 것을 보고 듣는 중이 아닐까? 게다가 인기 있는 가수들이 점점 더 영어로 된 노래만 부르게 된다면? 아름다운 가사로 쓰일 수 있었던 꽤 많은 우리의 언어가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한테 없는 것과 같다. 당연히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 언어를 통해서 보는 세계가 사라진다는 말과 똑같다. 눈에 보이는 문화유산만이 유산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이게 하는 언어도 우리에게는 더없이 값진 유산이다. 그런데 그런 유산들이 하나둘씩 그것도 점점 속도를 더해가며 지구촌 곳곳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오래된 책 읽기, 김언>


우리말의 구체성. 감정을 파고드는 다양한 표현, 색깔을 나타내는 수많은 낱말들과 소리와 몸짓을 보여주는 의성어 의태어들이 더없이 줄어든다면, 우리 안에 있었던 어떤 것이 사라지는 것과 같을 테다. 우리말로 된 노래 가사말이 보여주었던 세계가 사라진다면? 우리는 무엇을 잃게 될까? 우리말로 된 간판과 우리말로 된 메뉴판과 우리말로 된 수많은 것들이 영어로 대체돼버린다면, 분명 우리는 중요한 무언가를 잃게 될 것 같다. 그래서 시인이 필요한 거였구나. 언어를 지키는 일에 기꺼이 자기 삶을 쓰는 사람이 시인이었구나 한다. 시를 잘 모르지만, 시를 즐겨 읽지 않지만, 지금 이 시간 어느 방, 어느 창가에 앉아 첫 문장을 써 놓고 다음번 구절을 고민하는 시인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싶다.


하찮은 글이라도 글을 쓴다는 건 언어를 지키는 일이구나 한다. 언어를 지키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세계를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 몰랐던 사실을 알아내고 중요한 깨달음을 얻어낸 사람처럼, 나의 글에 정성을 더 들여야겠다 다짐해 본다. 많은 이가 읽어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써 내려가는 글이지만, 그런 나만의 위안 하나를 더 찾아낸 것 같다. 누군가에게 잘 읽히는 글이 아닐지라도, 조금 부끄러워서 아는 사람에겐 숨겨두는 글일지라도 언어를 지키는 일에 먼지만큼의 도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에 힘을 얻어 본다.


봄은 왔고, 생명을 품은 나무와 꽃이 여기저기 애쓰는 중이다. 미세먼지와 계속되는 가뭄에도 할 수 있는 한 온 힘을 다해 자기 것을 지켜내고 있는 꽃과 나무들을 보며 걸었다. 목련은 목이 말랐는지 꽃잎 끝이 메말라 있었다. 작년과 다르게 힘겨워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혹독했던 겨울과 인간이 가하는 해로운 모든 것들에 지칠 만도 했을 텐데 어떻게든 꽃을 피우고 잎싹을 내는 꽃과 나무들이 지켜내는 세상이다. 사라지지 않도록 붙잡고 있는 그들의 언어덕에 우리는 아직 살아갈만한 지구에서 생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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