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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없이 즐겁게 하는 일.

by 쓰는 사람 효주

최고의 경험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 순간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봐도 이거다 싶은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다시 돌아봐도 그건 좀 괜찮았었다 여겨지는 내 모습은 짧은 장면 장면으로 남아 있긴 하다. 이를테면 재밌는 소설을 붙잡고 밤을 새워 완독 했던 일, 얇은 영어 책을 번역해 작은 미니북을 만들었던 일, 재밌게 본 만화책의 그림들을 따라 그리며 그림을 완성하는 일에 집중했던 일 같은 것들이다. 대단한 일들은 아니지만 어떤 목적 없이 순수한 즐거움으로 몰입했던 순간들이었다.


" 삶을 돌아봤을 때 최고의 경험은, 산맥을 오르던 때에 한 것이었어요... 산을 오르면서, 정말로 어렵고 위험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는 일을 했을 때의 경험이요." 그때 나는 생각했다. 죽음을 향해 갈 때 '좋아요'나 리트윗 같은 강화요인들을 떠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몰입을 경험한 순간을 떠올릴 것이다. <도둑맞은 집중력, 요한 하리>


목표 없이, 꿈 없이 사는 사람을 한심하게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나 역시 이렇다 할 꿈도 목표도 없었으면서 왜 남들을 평가하거나 판단할 때는 그런 걸 기준으로 삼는지 모르겠다. 목표나 꿈을 이룬 사람도 있겠지만 내 주변엔 그리 많지 않다. 특히나 무엇이 되고 싶다는 목표를 이룬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다만 '지금보다는 조금만 더 큰 집으로 이사 가고 싶어'라든가 '이젠 책 좀 읽으면서 살아보려고'라던가 ' 여행도 다니면서 살고 싶어'처럼 단순하고 작은 것들은 대체로 잘 이루면서 삶을 가꿔가는 사람들은 꽤 많이 보아왔다. 세상사람들이 "와"할 만큼의 대단한 업적을 이뤄낸 사람이 드문 이유는 뭘까? 모두가 그런 걸 이루기엔 자질과 능력이 부족해서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좀 다르게 결론 내리고 싶다. 우리들 대부분은 그렇게 원대한 결과물이 없어도 괜찮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감사와 만족이라는 단순한 두 낱말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원대한이란 결과물이 없어도 괜찮아지게 삶인 것 같다. 인류의 발전과 인간의 무한한 성장을 위해서는 더 많이 더 높이 더 빠르게란 가치를 절대 놓아서는 안 되는 줄 알았다. 엄청난 기술들이 개발되고 이루 말할 수 없이 편리해지는 기계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감사와 만족 안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압박이 가득한 성장기를 보냈었다. 그러나 발전이라는 희망회로에 끝이 없다는 걸 알려주는 어른은 없었지. 어제보다 오늘 더 발전했지만 더 먼 미래를 위해서는 오늘 역시 또 다른 발전을 향해 나아가야 했다. 끝이 없는 개발과 발전. 그것은 누구의 행복을 위한 것이었을까? 자본주의라는 배부른 돼지? 이것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며칠 전 언니와 다녀온 식물원은 비밀의 화원 실사판만큼 아름다웠다. 커다란 철쭉나무를 양 옆으로 세워둔 좁은 숲길 끝에 웅장하게 뻗은 메타세쿼이아 나무를 보고 마음이 얼마나 놀라고 신이 났는지. 둘이서 두 손을 양 옆으로 펴고 자연에 취한 사람들처럼 그 길을 빙글빙글 돌며 걸었다. 자연 안에 완전한 몰입.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 초록에 젖은 눈이 맑아져 집안의 모든 것이 전보다 훨씬 선명하게 보여 새롭기도 했다. 일부로 시간을 내어 목적 없는 일에 순수히 몰입하는 일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감사와 만족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해 준다면, 그것을 취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릴 적 그들이 우리에게 그려 놓은 세상이 진짜가 아님을 깨닫고 자기만의 참세상을 찾아내는 여정이었나 보다.


목적 없이 쓰는 글을 덜 부끄러워해도 될 것 같다. 목적 없이 하고 있는 방통대 공부도 허무해하지 말아야지. 결과 없이 몰입하며 즐기는 일들이 나를 지켜주고 있음을 꼭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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