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상하게도 참 닮았다. 나이도 사는 곳도 성별도 살아온 과정까지도 다른데 그분들이 쓴 책을 읽다 보면 마치 내 행동을 몰래 지켜보기라도 한 것처럼 느껴져 웃음이 나오거나 눈이 커다래지곤 한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도서관만 가면 절제심을 잃고 자주 거짓말쟁이가 된다. '오늘은 정말 반납만 하고 돌아와야지!'라는 결심은 도서관 문을 통과하는 순간 잊히기 일쑤고, 대출 가능한 권수가 초과되면 내가 소지한 가족의 회원 카드를 이용해서라도 빌려 오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짊어지고 간 책은 대개 다 못 읽고 반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마다 모종의 깨달음을 얻지만 그 깨달음이 나를 바꾸어놓진 못했다.(나의 작고 부드러운 세계, 신아영)
이미 사둔 책이 쌓여있거나 해결해야 할 과제물이 많아 오늘은 그냥 반납만 하고 오자 결심하지만 도서관 안으로 들어서면 그냥 가면 안 될 듯한 표정을 짓는 책들에게 굴복하고 마는 것이다. 한두 권만 빌려가자 결심해 놓고 대출 최대 권수인 5권을 초과해 가족 대출권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나 역시 빌려온 책들을 다 못 읽고 반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음번엔 꼭 읽을 책들만 빌리자 다시 결심하지만 언제나 되돌이표처럼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곤 한다.
한아름 빌려온 책이 내 전용 책상(사실은 식탁) 위에 올려지면, 맛있는 음식을 잔뜩 사 온 사람처럼 설레 마음이 두근거린다. 차곡차곡 책을 쌓아 놓고 예쁘게 사진 한 장을 찍는다. 때때로 카카오톡 프로필에 올려놓곤 하는데 책 읽는 사람이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고 가지런히 놓인 책들과 제목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너무 예뻐서가 주된 이유다. 그렇게 올려 두면 그 기간 내내 내 삶의 풍경이 되어 주는 것 같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위 문장을 써낸 작가만큼 어린 나이에 책을 만나는 행운을 누리지 못했고, 책 마니아라 부를 정도로 탐독하는 사람도 아니라 자랑할 것도 없지만, 2주마다 때때로 1주마다 들리는 도서관에서의 추억이 나에게도 자라자고 있음을 느낀다. 봄이면 도서관을 오르는 길 옆으로 피어난 벚꽃이 수려하고, 며칠 만에 부는 큰 바람에 우수수 떨어져 버리는 꽃잎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본 날도 허다하다. 산 중턱에 마련된 도서관의 협소한 주차장 때문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고, 오래되고 낡은 도서관 시설이 불편해 새로 도서관을 지어주길 바라는 글을 게시판에 올려보기도 했다. 그중 어느 것 하나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서관엘 간다. 아직 읽어야 할 수많은 책들이 거기 있고, 아직 만나지 못한 이야기와 작가들이 도서관 서가 곳곳에 소중히 꽂혀 있다는 이유로 말이다.
갈 때마다 만나는 어르신이 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도서관에 오르고 홀로 앉아 쌓아 둔 책을 읽으시는 머리 희끗하신 어르신,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취미생활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그분을 지나친다. 산책하듯 서가 사이사이를 걷는 즐거움을 누리며 다정하게 손 끝으로 책을 어루만지기도 한다. 그중 제목이 좋거나 낯설거나 하는 잡다한 이유덕에 선택되는 책을 펼쳐본다. 너무 어려운 내용이면 허겁지겁 다시 서가 안에 모셔두고 산책을 이어간다. 이미 읽은 책을 만나면 다정한 눈길을 보내기도 하다가 그리 길지 않은 서가 길 산책이 끝나면 손 안에는 빌리고 싶은 책들이 쌓여 있다.
집으로 모셔온 책이 생각보다 재밌거나 괜찮으면 보물을 찾은 사람처럼 신나게 독서를 이어간다. 나만 알고 있기 아까운 내용이면 가까운 친구들에게 추천해 주기도 하는데 내 기준은 내가 읽기 좋은 내용보다는 어떤 이가 읽어도 재밌을 것 같은 혹은 유익할 것 같은 책일 때다. 그렇기에 나의 추천은 무척이나 드문 편이고 그러기에 친구들은 나의 추천을 믿어준다.
지난주 도서관에서 데려온 친구들은 정아은의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브라이언 딜런의 <에세이즘>, 사를 페팽의 <삶은 어제가 있어 빛난다>, 고수리 <선명한 사랑>, 한강의 <노랑무늬영원>, 신아영의 <나의 작고 부드러운 세계>다. 여섯 권 모두 이주 안에 읽기는 불가능한데 일단 데려와 우리 집 공기도 쐬게 하고, 답답할 수 있는 도서관 서가에서 벗어나 여행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며, 나름 책을 사랑하는 사람답게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나는 책을 통해 여행하고 책은 나를 통해 여행하는 쌍방의 여행을 제공하며 우리는 계속 친하게 다정하게 믿음직스럽게 아름다운 우정을 쌓아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