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워야 하는 마음들이 있다. 성악설이나 성선설에 따라 인간을 정의하던 시절에는 어떤 것이 더 옳은가를 두고 저울질했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큰 행위는 배움뿐이란 생각이 더 커진다. 특히 사람을 배우려는 노력, 마음을 이해하고, 행동을 관찰하고, 말하는 것을 들어주고, 가진 것을 주고받는 마음을 키우는 노력이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의 길을 걷는 방법이다. 삶이 바쁘고 정신없을 땐 누군가를 자세히 볼 시간적 공간적 여유가 없었는데, 아이들이 커가니 나에게도 그런 여유로운 틈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그래서 자세히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중이다. 자세히 본다는 건 졸졸 쫓아다니거나 뚫어지게 쳐다본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이가 했던 말이나 행동들을 한 번 더 따져보거나 왜 그렇게 했는지 찬찬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는 의미다. 부탁할 일이 있어 보낸 긴 문자에 답신이 없는 사람에게 무례함이 느껴 저 얼굴이 붉어질 정도록 씩씩 거리다가 잠깐 멈춰서 생각할 시간을 가져 보는 노력. '아이가 셋이나 있으니 늘 바쁘겠구나',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으니 내 부탁이 귀찮을 수도 있겠구나', '원래 문자에 답장하는 일을 싫어하는 사람이구나'하는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그렇다고 천사처럼 '그래 그럴 수 있지'하고 금방 이해하고 넘어가지 진 않는다.(내 그릇은 아직 너무 작다) 다만 불쾌하고 무시받은 것 같은 마음이 조금은 옅어진다. 하루 종일 그 일 때문에 씩씩 거린다거나 그 사람을 지나칠 때마가 굳은 표정을 짓는 똑같은 무례함을 저지르지 않게 된다.
사람의 마음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소설을 읽는 거다. 일전에 자본주의적 샘이 아니라 포도밭주인의 샘법으로 나누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와 딱 어울리는 이야기를 소설 속에서 만나니 무척 반가웠다. 조는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는 자신보다 노닥거리며 일하는 프랭키가 더 많은 돈을 받는 게 억울해 아빠에게 하소연한다.
"내가 저 사람보다 더 많이 따요. 아빠." 나는 프랭키가 생각 없이 블루베리 한 알을 입으로 쏙 넣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게다가 저 사람은 따는 족족 먹는다고요."
"조, 어떤 사람들한테는 세상의 관대함이 필요하단다. 알다시피 프랭키는 아기였을 때 물에 빠져 거의 죽을 뻔했고, 그 이후로 잘 자라지 못했잖니. 프랭키는 아무 잘못 없어. 신이 프랭키를 위해 마련한 계획이 틀림없이 있을 테니까. 우리도 그냥 프랭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야. 프랭키도 우리처럼 여름마다 이 일이 필요해. 여기 와서 불가에 둘러앉아 쉬고 용돈이라도 벌면 좋잖아. 뭐라도 기대할 만한 일을 갖게 해 주자."(베리 따는 사람들, 아만다 피터스)
조의 아빠의 말을 나 역시 새겨듣는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라는 말에 감흥하지 못하는 굳은 마음은 이런 소설을 통해 조금씩 풀어진다. 몸과 마음이 미성숙했던 프랭키는 블루베리 따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게다가 먹기까지 한다. 그런 프랭키가 못마따한 조에게 아빠는 그런 사람에게도 일이 필요하며, 가진 것을 나눌 필요가 있음을 아들에게 가르친다.
노력만으로 인생이 공평해지지 않으며, 때때로 너무 많은 행운과 운이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는 아이러니한 법칙 때문에 훨씬 덜 가진 사람들이 생기게 된다. 특히 자본주의는 5%의 실업률을 감당해야 하는 체계라고 했다. 즉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전체 인구의 5%는 일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덜 가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배우지 못해서, 집안이 가난해서, 몸과 마음에 장애가 있거나, 조금 느리게 세상을 받아들이기에 출발선부터가 엄청나게 다른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우리가 가진 것을 내놓고, 받아야 할 혜택을 양보하고, 때때로 그들이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가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런 마음은 한 편으로 우리보다 더 높은 출발선에서 더 많은 혜택과 부를 누리며 사는 사람들을 인정하는 마음과도 연결된다.
'조'가 부러웠다. 그런 가르침을 주는 아버지를 가졌다는 사실에 말이다. 때때로 전 국민 한 달에 한 권씩 소설책 읽기 같은 세금을 부과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니 어떤 책이라도 읽도록 세금으로 부과한다면? 우리 사회에 당면한 수만 가지 문제 중 적어도 한 두 개는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생각은 독서 신봉자들의 헛소리일지도 모르지만, 상상은 자유이며 그렇게라도 독서 인구가 늘어난다면 왠지 좋은 일이 더 많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