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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이 있는 일상 May 17. 2024

아무것도 되지 않을 글을 쓴다.

가치와 의미에서 해방된 그저 쓰는 일의 즐거움.

여름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음을 알았기에, 당신은 꽃에서 꽃으로 돌진하는 벌꿀처럼 그렇게 세부적인 것들을 모아나갔다. <슬픔에 이름 붙이기, 존 케닉>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기에 글을 쓴다. 꽃 곧 시들어 떨어짐을 알기에 사진 속에 담아 두듯이. 나를 이루고 있는 세상이 감쪽같이 사라질 날이 오고야 만다는 사실은  글을 쓰게 만든다. 지금 여기의 알아차림을 기록하고 싶다.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을 잠깐 멈춰 세우고, 가지만 말고 가만있어보라 한다. 여기 이곳 이 작은 화면 위로 내려앉아 좀 쉬었다 가라고 말고 싶다.


글을 쓸 때 아주 잠깐이지만 시간이 멈춰 선 듯 정지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정신없이 떠오르는 생각을 쓰는 순간이 그렇고, 어떤 걸 써야 할지 몰라 멈춰 서 있을 때가 그렇다. 그러나 잘 알고 있듯이 시간을 멈추는 힘은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있다. 우리 힘으로 시간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죽음뿐. 얼마 전 길 모퉁이에 죽어 있던 까치는 죽음으로 자신의 시간을 멈췄다. 나는 움직이며 그를 지나쳤지만, 그는  쓸쓸한 뒷모습만 보인 채 그대로 누워 있었다. 살아 있는 나의 시간과 죽어 있는 까치의 시간이 우리의 만남으로 일치된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까치에겐 시간이 사라졌으니, 우리는 서로 끝내 만나지 못한 채, 서로를 알지 못한 채 삶과 죽음으로 만났을 뿐이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바로 나다. 쓰는 것 일상의 즐거움이 된다. 목적 없는 글은 끝내 목적지를 찾지 못하고 사라져 버겠지만, 나는 영화 <패터슨>의 패터슨이 되고 싶다. 시를 쓰는 행위 자체로 행복을 만들어 갔던 . 시집을 낸다거나 유명한 공모전에 도전해 본다거나 하는 욕심 없이 그저 쓰는 것으로 만족해했던 그. 버스 운전을 하면서 들오는 승객들의 이야기를 시로 썼다. 길을 가다 우연히 만난 어린 여자아이와 시에 대해 진지하고 행복한 이야기나눴다. '시'를 일상에 두고 그것을 읽고 쓰며 즐기던 패터슨. 무엇이 되겠다는 욕심 없이 좋아하는 일로 일상을 살아간 그가 바로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다.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애창곡을 따라 부르는 사람 더러 그렇게 노래가 좋으면 가수가 되지 그랬어?라는 말이 얼마나 우습게 들리겠는가. 그는 그저 좋은 것이다. 흥얼거리는 노래가, 투박하고 거친 목에서 나오는 애창곡이. 오늘을 기록하고 생각을 쓰고 궁금하고 알고 싶은 이야기를 고백하는 나의 글쓰기도 그런 거다. 글은 투박하고 촌스럽지만, 나는 이래서 좋은 거다. 내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이 시간이. 아무 욕심 없이 그저 기록하는 이 순간이 내 일상을 채우고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한다.



어째서 우리는 무언가가 돼야 할까? 아무것도 되 싶지 않았던 <호밀밭의 파수꾼>의 콜필드는 그저 호밀밭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했다. 날아오는 새들을 쫓고 하루 종일 호밀밭 곁에 머무는 일상을 살고 싶다고, 그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일이 좋다 하니 그를 둘러싼 어른들은 기가 찰 노릇이다. 머리가 어떻게 된 것 같아 그를 치료하려 든다. 그가 원하는 건 자유였는데, 세상은 그런 그를 미워했다. 오십이 코 앞인 나도 엇이 되지 않을 자유를 꿈꾼다. 이효리 씨가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꿈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해 보고 싶다고, 사랑이 뭔지 아직 잘 모르지만 죽기 전에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해내고 싶다고, 그녀의 영상을 봤을 땐 배부른 소리란 생각도 잠시 들었다. 어려운 것 없는 삶이니 꿈도 거창하구나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되지 않을 자유를 꿈꾸는 나와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해보고 싶다는 그녀의 꿈은 다르면서도 닮았다. 무엇이 돼야 한다는 세상의 압박에서 자유로운 꿈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내 삶이 계속되지 않음을 알기에 나는 작고 소소한 것들을 모아 나간다. 사라지는 모든 것들이 품고 있었을 아름다움과 찬란함을 찾으며, 아무것도 되지 않을 글을 모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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