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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이 있는 일상 May 24. 2024

행복에 이르는 길

나만의 우주 안에서 나만의 행복을 만드는 삶의 공평함.

" 아니야, 너는 지금 스스로를 속이고 있어! 행복한 '척!'을 하고 있는 거야." 내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생각해 보면 그 형은 '행복'에 대한 본인만의 기준점이 있었던 거다. 성수동 지하의 작은 주물 고장에서 땀 뻘뻘 흘리며 일하는 육체노동자가 행복할 리가 없다는 게 그 형의 기준이었다. <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김동식>


오래전 방글레데시라는 나라의 행복지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허름한 판잣집 같은 곳에 살면서 충분히 먹지도 자지도 씻지도 못하는 삶인데 행복하다며 웃는 그들의 사진을 보니, 원래부터 가진 게 적으니 행복의 기준이 낮은 거겠지 했었다.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나오는 출연자들 중 '지금이 가장 행복해요'라고 말하는 사람에겐 자연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아픈 사연이 있었던 게 아닌가를 생각했다. 누군가가 행복하다고 말할 때마다 내 기준으로 판단하려 드니 그 말에 진을 보지 못다. 그런 어리석음이 내가 가진 행복마저 하찮게 만들었던 건 아닐까?


지금껏 마셔온 수많은 커피 중에 가장 맛있었다고 단언할 수 있는 커피는 인천 부개동 성당 입구 앞에 놓여 있던 100원짜리 자판기 커피다. 먹어왔던 수많은 음식 중 가장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는 건 다세대 주택에 살던 시절 벽 하나를 두고 이웃으로 살았던 옆집 신혼부부가 만들어 야채부침개와 빈병을 주워 모은 돈으로 막내 언니가 사주었던 50원짜리 쭈쭈바 장에 나갔다 오신 날에 오직 나를 위해 사 오신 아버지의 콩알 사탕 같은 것들이다. 그 작은 것들을 마음에 품고 오래오래 기억하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수십억짜리 집을 사고 수천만 원짜리 명품 옷이나 가방에 홀릭하고, 몇백만 원짜리 한 끼 식사를 하면서 느끼는 행복의 크기와 지난날 작고 소소한 것들과 함께 하며 느꼈던 나의 행복의 크기가 과연 하늘과 땅만큼 다를까?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우는 감정의 기본 값을 생각해 본다면, 그 본질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내 수중에 몇억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하지만, 막상 그리 된다 해도 나는 여전히 배고플 때 먹는 음식을 가장 맛있어하고, 오래된 친구와의 수다에 즐거워하고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을 멍하니 바라보는 꽃멍의 시간을 가질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수중에 몇억 없는 게 인생에서 별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풍족하게 살지 못해도 하루하루가 행복하다고 말하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마음이 참말이었구나 한다. 산속 깊숙이 낡고 오래된 집에 외로이  살면서도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말하는 자연인의 진심도 보인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가질 수 없는 건 타인이 느끼는 행복이 아닐까? 생각이 거기에 이르니 불공평하다 여겼던 인생의 어떤 부분은 그래도 공평하겠구나, 누구든 자기만의 우주 안에서 자기만의 행복을 가꾸며 살 수 있다는 것.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공평함이나 한다.


열심히 일한 돈을 차곡차곡 모아 목돈을 마련해 놓고 느끼는 작은 행복이 누군가 주 대박으로 하찮은 일로 보인다면,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거다. 차곡차곡 늘어나던 통장의 잔고를 확인할 때마다 들었던 부푼 설렘과 뿌듯함은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당사자의 고유한 경험이며 감정의 재산이다.  리의 행복이 김연아 선수가 되고, 우사인 볼트처럼 빠르고, 유재석같이 국민적 사랑을 받고, 톨스토이처럼 대작을 쓰는 작가가 되는 일에 놓여 있다면, 우리의 삶은 결코 행복에 이르지 못할 테다.



해서, 여기 이곳 지금 이 순간을  나만의 행복으로 채우는 일, 그것만이 진짜 행복에 이르는 길임을 기억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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