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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이 있는 일상 May 31. 2024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에게

마음을 어루만질 시간.

그 도둑, 아니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까. 그리고 잘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그 후로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주 나쁜 운이 그를 다녀가진 않았기를 바란다. 정릉 술집의 그 사장님은 어떻게 살까. 인심 좋은 것으로 입소문이 나 어딘가에서 단골손님이 끊이지 않는 식당을 하고 계신 거면 좋겠다. 캐리어로 내 어깨를 친 사람도, 과자 봉지를 울타리에 구겨 넣은 사람도, 실은 그냥 무탈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김신지>



그 선생님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까. 내 사과를 끝내 받아주지 않아 함께 지내는 동안 내내 불편했던, 끝까지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던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 세상에는 특별한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버렸지.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얼마나 많이 던졌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납득이 될만한 이유가 없으니 나는 풀리지 않는 문제를 받은 사람처럼 답답한 시간을 꽤 오랫동안 보내야 했다. 이후로도 그 일은 상처로 남아 떠오를 때마다 아프게 나를 찔러 댔다. 울기도  했고, 화도 내보고, 때로는 '너는 뭐가 그리 잘났길래?'라는 악다구니를 뱉으며 분노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더더 흘러 그 사건과의 거리가 더더더 멀어지고 보니, 마음 달라지고 말았다. 나를 미워했던 그 사람의 마음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사실과 이 세상이 나와 완전히 다른 타인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후로 는 그 사람이 무탈하게 잘 살고 있기를 바랄 수 있게 되었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쌀쌀맞고 냉정했던 표정이 이제는 밉지 않다. 언제고 다시 만난다면 "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라고 먼저 말을 걸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이가 든다는 건 마음의 자리를 넓히는 일인가 보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하루하루가 바쁘고 일에 쫓길 때는 누군가의 안녕을 바랄 틈조차 없다. 내 눈앞에 보이는 일을 처리하느라 다른 것에 눈을 돌리지도 못한다. 그런데 시간이 생긴다면, 가만히 앉아 흐르는 시간을 멍하니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마음껏 주어진다면, 마음의 지도는 크고 넓어진다. 불같이 끓어오르던 분노가 줄어들고, 안될 것만 같았던 일들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진다. 미움과 불안과 강박이 줄어들니 여유가 더 생긴다. 용서하지 못할 것 같은 사람에게도 작은 마음에 문이 열리는 기적도 생기고. 해서, 어쩌면 그 선생님에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아주 오래전 어떤 사람을 미워했던 자신을 용서할 수도 있다. 우리가 다시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만남이 없더라도 그렇게 서로의 안녕을 빌어준다면, 그것으로 화해의 시간이 시작될 있지 않을까?


우리는 영원히 누구도 미워할 수 없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시간이 없을 뿐이다. 미워한 마음을 내려놓을 시간,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할 시간, 타인의 아픔에 공감해 줄 시간 말이다. 먹고사는 일에 쓰는 시간이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고 더 많이 생각하고 쓰고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인간은 어떤 것도 진심으로 미워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유튜브에서 본 어떤 영상에서 '너무 착하게 살려고 하지 마세요. 인간은 원래 악한 존재입니다.'라고 했었다. 그때는 '맞아. 인간은 원래 악해'라며 공감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꼭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우리에겐 어린 시절부터 무언가를 생각할 시간이 늘 부족했을 뿐이다. 미디어도 없고 학업에 대한 압박도 없이 하루종일 뛰놀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의 나는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미워해본 적이 없었다. 시간은 늘 충분했으니까.


그래서 나 역시 김신지 작가처럼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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