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책이라면
남겨두고 전해지는 인간의 모든 것이 책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주위의 모든 재료를 이용해 책을 만들었습니다. 돌, 뿔, 뼈, 흙, 가죽, 잎사귀, 바위, 넝마, 비단, 종이 등 온갖 것들에 자신의 생각을 담고자 했던 인간의 마음. 그것은 불멸을 향한 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책은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불멸을 꿈꾸는 인간의 소망을 표현하며, 인류의 역사는 또한 책의 역사인 것입니다. <살아있는 도서관, 김이경>
거래처인 청산수목원 안의 커피숍에는 메모지로 된 나무가 있다. 손님들은 각자의 생각을 적어 나무에 걸어둔다. 먼 훗날 다시 찾아왔을 때 자신이 적어둔 메모지가 여전히 남아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도 다르지 않다. 분수에 돈을 거꾸로 던지는 사람들, 자물쇠를 걸어두고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는 사람들, 낙서로 가득한 가게의 한쪽 벽에 이름을 남겨두고 가는 사람들이 바라는 건 인간이 주변의 모든 재료를 이용해 책을 만들었던 마음과 무척이나 닮았을 것 같다.
불멸을 꿈꾸는 인간은 이제 디지털화된 책까지 만들어 냈으니, 어쩌면 책을 통해 우리는 영원히 살아있는 존재가 될 수 있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다 보면, 늘 작가들의 목소리가 찾아온다. 박완서 작가님이 그랬고, 김소연 시인이 그랬다. 어떤 작가든지 자기만의 목소리를 책에 넣어두고 독자를 만난다. 일전에 읽었던 한 작가님의 글을 통해 그분의 선명한 목소리를 느꼈다. 살면서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인데 나는 어떻게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을까? 목소리를 통해 영혼이 나타나는 거라면, 글을 쓰는 일은 영혼을 담는 일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 올라온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을 보고 기쁜 마음으로 영상을 클릭했다가, 일분도 안되어 채널을 껐다. 얼굴도 머리도 몸짓도 앤 셜리가 분명했지만, 어릴 적 내가 만났던 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목소리가 달라진 앤에게 영혼을 느낄 수 없었다. 나에게 그 영상의 앤은 앤 셜리가 아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기에 실망과 슬픔이 동시에 밀려왔다.
기록하고 남겨두려고 애썼던 모든 개인들이 우리의 역사를 만들었다. 차곡차곡 쌓인 인간의 책이 문자를 만나 글이 되고 책이 되었지만, 어쩌면 우리 자체가 하나의 책일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에 나온 이야기처럼 인간책을 대여할 수 있는 도서관이 있다면, 나는 한두 시간 그 책을 대여해 읽고 싶다. 그 생생하고 기막힌 목소리로 자신을 들려주는 책 속에 빠져 침묵 속에서 완독 하고 싶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일은 종족 보존본능이겠지만 책의 시선에서 본다면, 인간이 부모가 되는 이유는 자신이라는 책을 아이에게 물려주기 위함이 아닐까? 유전으로 혹은 유산으로. 학창 시절 나무 책상 위에 뾰족한 연필심으로 나의 이니셜을 새겨 넣었듯이 이 세상에 내가 존재했음을 새겨 넣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생명을 탄생시켰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생명은 또 다른 책이 될 테다.
우리가 애초에 책이었다면, 인간이 남긴 수많은 기록과 구전과 그림과 어떤 행위와 습관 같은 모든 것이 낱낱이 이해된다. 책은 남겨지고 전해지는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