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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이 있는 일상 Jun 28. 2024

39억년을 향하는 지구의 어떤 밤

영원한 건 없어. 그렇지만 1억년은 영원과도 같아.

생각해 보면 살아 있는 상태가 너무 신기하지 않은지? 꼭 개인적 얘기, 사람들 얘기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그렇다. 지구가 초속 30킬로미터로 빙글뱅글 날아가고 있는데 그 위에서 온갖 동식물이 38억 년 동안 생겨났다 멸종했다 하며 보글보글 지내왔다는 것이.... 우주는 죽어 있는 게 더 자연스러운 상태인데 어떻게 다들 살아 있지? 거의 매일 놀란다. 심장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뛰었다니? 신경을 쓰지 않는데 호흡이 계속된다니? 산책만 나가도 흥미로운 발견을 하고 화분에 새잎이 나면 기분 좋은 충격을 받는다. 다른 요인들도 있지만 환경 주의자가 된 것은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아팠던 청소년이 쉽게 경이로워하는 어른으로 자란 것이다. 경이의 스위치가 반발력 없이 딸깍딸깍 눌리고 말아서, 다른 아팠던 사람들을 조사해 보면 얼마나 비슷한 성향일지 궁금해진다. 나의 노래 부르며 행진하는 스머프 같은 성격이 좀 부담스럽다는 평을 들을 때도 있는데, 나름의 맥락이 있다. 어둡고 죽어 있는 우주에서 기적 같은 지구에 산다는 것이 신기해, 냉소와 절망에 빠졌다가도 빨리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장세랑,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


살아있음을 기적으로 느낄 수 있으니, 냉소와 절망에 빠졌다가도 빨리 벗어날 수 있다는 문장을  읽고 읽어  어떤 마음인지 알아내고 싶어 진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는가를 가늠해 보았다. 태양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지구 위에 아무 탈없이 살아있다는 경이를 느끼기엔 무딘 감정을 소유한 나는 대신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온다는 진실과 같은 무게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해서, 입버릇처럼 하는 말은 ' 이미 다 끝난 일이야. 되돌릴 수 없어. 잊어버리는 게 상책이야.'같은 것들이다. 때때로 너무 느리게 지나가야 하는 버팀의 순간에는 '지나간다. 영원한 건 없어'라는 말을 기도문처럼 외우곤 했었다.

다가올 문제가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도통 잠 못 이루는 밤이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어 불안할 때는 '괜찮다. 괜찮다를 천천히 반복하며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쉰다. 그렇게 마음을 편안하게 유지시키는 연습을 하다 보니, 어느 날부터는 좀 더 쉽게 불안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감정은 '화'다. 욱하는 감정이 한순간 나를 지배해 버리면,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나 말을 너무 쉽게 밖으로 뱉어버리니 죽는 날까지 트레이닝받아도 고치기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싶다.


아팠던 청소년이 쉽게 경이로워지는 어른으로 잘랐다는 말은 진심으로 보인다. 간당간당한 삶을 살아본 사람은 작은 것이 소중해진다. 사십구 년 인생에서 오 년은 그리 길다고 볼 수 없는 시간이지만, 세상과 단절되어 간당간당한 목숨을 유지한 체 죽음 앞에서 서성이던 경험을 한 시간으로 치자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 시간을 보내고 온 사람은 전과 다른 것들이 보이게 마련이고, 이내 삶의 소중한 것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그때는 알지 못했다. 지나고 나서 보니 그랬다는 게 보일 뿐.


가난한 집 육 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돌이 되기 직전에 엄마를 잃고 일곱 해를 더 살다가 간 아버지와도 이별해야 했던 나의 성장기를 소설로 읽었다면, 필시 주인공의 각박한 환경에 동정심을 느끼거나 안타까움 때문에 여러 번 한숨을 지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인생을 산 나는 내 인생의 각박함을 몰랐고 불쌍함이라던가 연민 따위도 느끼지 못했으니. 아이러니가 따로 없다. 소설 속에 존재하는 불우한 환경의 주인공들 역시 그럴지도 모른다. 독자의 눈엔 안쓰럽기만 한 인물의 내면에는 명랑함이나 유머가 차고 넘칠 수도 있다. 언젠가 아이가 셋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한 엄마에게 " 아이고 고생 많겠어요"했다가 아이들이 예쁘고 행복하다는 대답을 듣고 뻘쭘했던 기억이 있다. 섣부른 판단, 섣부른 편견이 누군가의 인생을 쉽게 왜곡할 수 있겠구나 했다.


38억 년이 넘는 동안 지구 안에 수많은 생명이 탄생과 죽음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과 나 또한 그 생명 중 하나라는 경이로움을 잠시 느껴본다. 인간 생명 100년이라고 해봤자. 38억 년에 비하면 하찮고, 100년과 비교해 보면 38억 년은 영원한 시간과도 같다. 피고 지는 꽃처럼. 살고 죽는 모든 생명체를 품어내고 있는 지구에서 나의 아픔정도야 순간도 찰나도 아닐 테다. 영원한 건 없다 단언했던 나인데 앞으로 남은 지구의 수명이 1억 년일지라도 그것은 우리에게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 아닐까 싶다. 그때까지 어떻게든 계속될 인간의 삶을 떠올려보자. 우리의 모습이 5000년 후에도 같을까? 5000년 전 미래의 인간을 궁금해했을 과거인처럼 나 역시 그리 해 본다. 이상하게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은 느낌. 보이는 것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으로 판단하는 인간이기에 그 이상의 결론은 내리지 못한다. 이 밤도 39억 년을 향해가는 지구의 어느 한 발자국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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