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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이 있는 일상 Jun 21. 2024

마음이 닿았습니다.

누군가가 써 놓은 글에 마음이 닿으면 다시 글이 됩니다.

"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습니다.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또한 잡초입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 것이지요. 삼산도 원래 잡초였을 겁니다. 이런 말을 덧붙였더라고요. 그러니 스스로 잡초라 할 일이 아니네요. 용기를 갖자고요."<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김창완>


잡초란 없다는 말이 마음으로 전해집니다. 이름 모를 풀들에게 일일이 이름을 붙여주기 힘들었겠지요. 사람 이름도 생각날 둥 말 둥 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가 여기저기 피어난 풀의 이름을 지을 수 있었겠어요. 하여, 모두 다 뭉뚱그려 잡초라고 부르기 시작했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특별한 삶과는 거리가 먼 보통사람들은 때때로 잡초 취급을 받거나 스스로를 그리 여기기도 했지요. 그런데 과학의 눈으로 들여다보니, 잡초는 없었다는 겁니다. 그 눈으로 세상을 보니, 우리도 그러하더랍니다. 어디에 쓰이느냐, 얼마나 아름다운가, 쓸모가 있는가를 따져드는 세상의 잣대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그저 고유한 존재들일뿐입니다. 그러니 그 안에도 고유한 것들을 담아야겠지요.


제가 지금부터 동그라미를 여백에 되는 대로 그려보겠습니다. 마흔일곱 개를 그렸군요. 이 가운데 V표시한 두 개의 동그라미만 그럴듯합니다. 회사 생활이란 것도 47일 근무 중에 이틀이 동그라면 동그란 겁니다. 너무 매일매일 일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동그라미를 네모라고 하겠습니까. 세모라고 하겠습니까? 그저 다 찌그러진 동그라미들입니다. 우리 일상도. < 위의 책>


완벽한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찌그러진 동그라미도 동그라미라고 부르지요. 세모와 네모로 이름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완벽한 동그라미를 그리려고 너무 애쓰느라 손가락이 아파 괴로운 건 아닌지요. 동그라미 그거 하나가 뭐라고 그곳에서 진을 빼고 있는 건지요. 찌그러진 동그라미를 보고 괜스레 속상해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찌그러진 수많은 동그라미 속에 조금 더 예쁘고 완벽한 동그라미가 한 두 개 그려질 수 있어요. 그렇다고 그런 동그라미만 진짜 동그라미라고 인정하진 않지요. 모두가 다 동그라미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동그라미처럼 그려질 겁니다. 매일매일. 완벽하진 않아도 각자의 손끝을 눌러 그려진 동그라미는 그런대로 다 의미 있는 동그라미로 남을 겁니다.


늘 뭔가를 찾아다녔던 것 같아요. 근데 크면서 그게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걸 느꼈습니다. 지루한 뭔가를 지나지 않고서 할 수 있는 것, 도달할 수 있는 곳은 없더군요. <위의 책>


꽝~하는 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 역시 늘 뭔가를 찾아다녔거든요. 나에게 맞는 일.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을요. 근데 그런 일은 없었던 것 같아요. 책을 아무리 좋아해도 그걸로 돈 벌어먹고살게 되면, 이상하게 지루해지는 겁니다. 지금 하는 일도 마찬가지구요. 좋아서 다시 시작한 공부지만,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는 순간이 오더군요. 그런데 결국 남는 건 지루한 순간을 버텨내고 끝까지 해냈을 때 있는 것 같아요. 글 쓰는 일도 마찬가지 아니세요? 글쓰기가 아무리 재밌어도 지루하고 재미없어지기도 하잖아요. 한 글자도 쓰고 싶지 않은 날도 있고요. 그런데 그런 날을 버티며 쓰고 또 씁니다. 그러면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있을 거라 믿으면서요.


드라마 같이 화려할 것 같았던 인생의 대부분이 반복되는 지루함의 연속이더랍니다. 오늘 하루가 마지막인 것처럼 살자는 말도 자꾸 곱씹어 보면, 그 마지막 날을 계속 반복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여요. 그래서 삶도 어쩌면 지루함을 지나야 마침내 도달할 수 있는 곳으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요? 그것이 죽음일지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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