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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이 있는 일상 Jul 05. 2024

'정상'과 '비정상'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

" 우리가 중력의 깊은 우물 바닥에서, 9천만 마일 떨어진 핵 불덩어리(태양) 주위를 도는, 기체로 뒤덮인 행성 표면에서 살고 있으면서 이것을 '정상'이라고 여긴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의 관점이 얼마나 왜곡되기 십상인지를 잘 알 수 있다."<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카를로 로벨리>


정상이라 여기는 것들을 생각해 보자. 탄생과 성장, 이후로 대학진학과 취업 그리고 결혼, 육아, 중년, 그리고 노년 이후의 죽음이라는 삶의 쳇바퀴를 '정상'의 궤도에 올려놓으면 이 궤도를 벗어난 모든 행위는 '비정상'의 범주에 들어간다. 지금보다 더 다양한 인생모형이 만들어지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나? '비정상'이라 여겼던 수많은 갈레의 길을 선택할만한 용기를 내기까지 인간이 겪어야 할 어려움을 상상해 보면, 누구나 거쳐간다는 '정상'의 길을 선택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들판에 핀 꽃을 보자. 다들 똑같은 속도로 꽃을 피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각자의 속도에 맞춰 자라고 꽃을 피우는  무질서함과 속절없는 혼란이 자연을 아름답게 만드다. 그런데 어째서 인간의 삶은 '정상'이라는 궤도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할까? 우리는 왜 똑같은 나이에 초등학생이 되고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돼야 하나? 그렇지 못한 길을 가는 사람을 비정상으로 보는 시선. 인간이 정상이라 부르는 모든 것을 회의하고 싶은 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의 움직임을 정상이라 여기는 마음부터 내려놔야 한다. 거대한 불덩이 주위를 시속 몇백 킬로미터의 속도로 돌고 있는 이 행성 위에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이르키고, 죽내 사내하며 서로를 헐뜯고, 땅을 파내고 쓸만한 모든 돌덩어리를 꺼내 무언가로 만들어내는 인간의 삶이 어째서 정상의 영역에 드는 것인지. 하는 의문으로 머릿속을 뒤죽박죽 휘져어 놓는다.


<경애의 마음>을 읽고 있던 나는 잠시 멈춰 지구를 떠올렸다. 우주 속에서 생명을 품고 있는 단 하나의 행성이라 여겨지는 이곳에서 그것이 멈추지 않고 뱅글뱅글 돌고 있음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독서를 하고 글을 쓰는  나. 지구는 같은 궤도를 돌고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지만 우리의 삶은 아침을 맞이하고 다시 저녁이 찾아오고 일상이 흘러가며 움직인다. 지구는 그대로인데 오직 그 안에 가득한 생명만이 날숨과 들숨을 뱉어내듯이 삶과 죽음을 오가는 중이다. 변하지 않는 움직임 속에서 수많은 것들이 변화하고 있다는 진실이 왜 이렇게 새삼스러운지. 정상과 비정상, 옳고 그름, 진실과 거짓, 사랑과 미움, 성공과 실패라는 구분되는 삶의 모든 이분법을 내려놓고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이 모든 것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 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과학이 밝혀내지 못한 세계까지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마음을 괴롭힌다.


시험이 끝난 아이들이 엄마에게 보내는 미안한 메시지 속에 담긴 진심을 보지 못하고, '그 점수로 어떻게 할 거니?"란 핀잔을 먼저 내뱉는 어리석음은 무한 반복 중이다. 거칠고 걸러지지 않는 언어를 이용해 인간이 수백 년간 만들어 놓은 정상 궤도 속으로 아이들을 밀어 넣는다. 비정상이 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 찬 나. 내 눈이 새로 태어나 이 모든 정상을 비정상으로 바라보고 무질서하고 속절없는 혼란만이 진실이라 여길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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