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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이 있는 일상 Jul 12. 2024

야만인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외침은 위장되고 은폐된 엘리트주의이다. 항상 열정만 좇으며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부모가 대학 등록금과 집세와 용돈을 다 대주는 젊은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중략> 꿈을 실현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현실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현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다. 이 현실을 만든 책임자나 이해집단, 노동 조건, 정치나 제도를 바꿀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그 결과 우리는 현실에 순응하고 탈정치화되며 자족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소비자와 생산 도우미로 전략하고 만다. < 내 안의 차별주의자, 라우라 비스뵈크>


끌어당김의 법칙, 원하는 미래를 이미지화하는 방법과, 이루고 싶은 꿈을 100번씩 써보는 기적으로 원하는 미래를 이루라고 조언하는 사람들을 만났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그들이 하라는 대로 실천했었다. 매일 간절히 원하는 것을 떠올려보고 이미지화시키고 그것을 새로 마련한 노트에 옮겨 적어 100번씩 100일을 채우는 일까지 해냈었다. 그런 책들에 빠져 또 새로운 방법은 없나 기웃거렸던 시간은 내 삶에서 그리 유쾌한 시기는 아니었다. 아이들은 어리고 큰 사고 후 남편은 언제나 아팠으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버거웠던 시간. 고된 현실을 바꿔 줄 만한 게 아무것도 없어  버텨야 했던 시기에 사탕발림처럼 들렸던 그 작가들의 문장에 현혹되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을 바꾸고 원하는 미래를 이뤄줄 마법 같은 주문을 달고 살았지만, 바뀐 현실은 오직 내가 선택한 변화 속에서만 일어나곤 했다.


큰 아이가 영어를 유독 힘들어해 두 달 정도 함께 올림푸스 영어독해를 공부했었다. 짧은 지식으로 아이를 가르치려니 힘들었지만, 그 시간 동안 내가 절망했던 이유는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영어지문 때문이었다. 우리말로 해석된 글을 읽어도 도통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들을 영어로 옮겨 놓고 어디 한 번 맞춰보쇼 하는 듯한 문제를 보며 이토록 힘든 공부를 해야 하는 교육 환경에 분노가 일었다. 그러고 보니 수능 첫 세대였던 우리 때부터 시작해 문제는 계속 어려워지고 있었다. 불합리한 교육을 바꿀 생각은 덜하고 어떻게 하면 그 바늘구멍 같은 인 서울을 차지할 수 있는가를 가르치는 일에만 열정을 쏟으니 사교육 시작은 일타강사 혼자서 몇백억 원의 수익을 얻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이 이룬 부를 부러워할 뿐 잘못된 교육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못 낸다. 개인의 노력하에 달려 있던 공부가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부, 그리고  사는 곳이 어디냐로 결정되어 버린 지 오래된 것 같다.


개인의 삶을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보면, 가난도 게으름도 사치도 외로움도 모두 다 개인 책임으로만 보일 테지. 그렇지만 우리가 가난하거나 게으르거나 사치를 부리거나 극도로 심한 외로움에 우울해지는 원인이 사회제도와 구조적 문제에 있을 때 훨씬 많음을 늘 기억해야겠다. 아내에게 야동을 찍으라 강요했던 전직 군인에게 3년형이 떨어졌다고 한다. 아내의 아버지는 법원에 나와 끌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몇 번이나 머리를 벽에 부딪히고 입고 있던 셔츠를 찢으며 울부짖었다. 극심한 수치심과 고통을 버티지 못하고 자살한 딸이 당한 억울함에 비하면 3년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리곤 자기편을 들어줄 거라 믿었던 나라에게 배신당한 기분이다. 저주하겠다는 독설을 퍼부었다. 그렇게 나는 법과 제도에 배신당한 한 아버지를 목도하면서 현실에 순응하는 자족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소비자와 생산도우미로 살지 않아야겠다 다짐했다.  멋진 신세계를 벗어나 야만인으로 살겠다 결심했던 소설 속 야만인과 같은 용기가 나에게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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