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소파에 누운 채로 과연 이 프로젝트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숲에서 밤을 보내는 것이 상당히 힘들었을뿐더러 너무 추워서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꿔야 할까? 아직 내 탐험 계획을 아는 사람은 몇 안 된다. 가족과 친구 몇 명밖에 없다. 지금 와서 포기했다고 하면 좀 창피하기는 하겠지만 그 정도쯤이야 괜찮을 것이다. 지금껏 살면서 포기한 적이 한두 번이었던가. 또 다들 금방 잊어버릴 것이다. <숲에서 1년, 토르비에른 에켈룬>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문장을 만나서 반하고 말았다. 매주 금요일은 왜 이리 자주 찾아오는지 이쯤에서 연재를 끝내고 포기할까? 고민하면서도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브런치로 들어와 글쓰기 버튼을 누르고 있다. 이 안에서 나는 인기 있는 작가도 아니고 구독자가 많은 것도 아니다. 지금 와서 그만 쓴다고 해서 누구 하나 관심 가지고 왜 더 이상 글을 써주지 않냐며 항의할 사람도 없다. 물론 나와의 약속이 있기에 스스로에게 좀 미안하겠지만, 그 정도야 늘 있어왔던 일이라 크게 신경 쓸 것도 없다. 그런 내 마음과 쌍둥이처럼 닮은 작가의 문장을 보고 웃음이 났다. 매달 한 번씩 홀로 숲으로 들어가 온전히 하루를 보내고 오겠다 다짐했던 필자는 1월이 시작된 후 딱 한번 탐험을 다녀온 상태다. 영하 10도가 훨씬 넘는 강추위 속에서 제대로 된 준비 없이 하룻밤을 보냈으니 얼마고 춥고 힘들었겠는가. 1월은 속절없이 지나가고 곧 2월이 왔다. 두 번째 탐험을 준비해야 할 시간인 것이다. 밖은 여전히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고 집안은 따뜻한 온기로 가득하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즐거운 하루를 보내기에도 인생은 짧은 것 같은데 춥고 외로웠던 숲으로 가려하니 망설여졌던 것이다.
누군가의 강요 없이 스스로 결심하고 실천한 일을 내려놓는 일은 얼마나 수월한가?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누구도 계속하라고 응원해주지 않는다. "그러게 뭣하러 힘들게 그런 걸 한다고 했어. 그냥 즐기며 살아~"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즐비하고 " 좀 더 해봐. 그 길 끝에 뭐가 있을지 모르잖아"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해낼 수 있으려면 아무런 생각이 없어야 한다. 글을 쓰겠다 결심한 이후로 오만가지 생각들로 머릿속만 복잡했지만, 이렇게 아직도 뭔가를 쓸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아무 생각 없이 써 왔기 때문이다. 내 글의 가치나 의미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써왔기에 계속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상의 논리에 소외된 조금은 개인적이고 외로운 글을 써야 하는 단점은 있다.
그러나 운동이든 글쓰기든 감사하기든 뭐든, 꾸준히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생겨나지 않을까 싶다. 숲에서 하루를 보내겠다 결심했던 필자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기에 한 권의 책이 탄생했듯이 말이다. 또 이렇게 글을 쓴다. 외롭고 소외된 나만의 창작노트지만 채워지고 있다. 마치 지금 이 순간 멋진 글을 써내고 있다는 듯이. 별 볼 일 없는 지난 글들은 쉽게 잊고 새로운 문장과 단어를 마주한다. 내가 아닌 나인 것처럼. 꿈꾸 듯이. 숲탐방을 그만두기엔 자연이 너무나 좋았다는 필자처럼 나 역시 문장을 모으고 쓰는 일을 멈추기엔 이 일이 좋은 걸 어떡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