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나 지금이나 글은 써지는 것이 아니다. 글은 쓰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지영>
그럴듯한 영감이 많은 사람이 글을 잘 쓰는 줄 알았다. 작가라면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해서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재능도 없고 영감도 메마른 내가 무슨 글을! 그런 건 어릴 적부터 책에 빠져 지냈거나, 글짓기 상 몇 개 정도는 탔거나 몇 번의 도전으로 공모전에 선발된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라 믿었다. 그들을 동경했지만 내가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너무 오랜 시간 지하 100킬로미터 아래에 묻혀있어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쓰는 사람이 되는 일은 누구에게나 가능했다. 다만 "잘"쓰는 사람이 되는 일이 다른 문제였을 뿐이다. 공부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무엇이든 배우는 사람은 공부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공부 앞에 "잘"을 붙여 놓으면 공무의 진짜 의미는 한없이 작아진다. 그러니 "잘"은 빼두자. 잘하는 것이 중요한 세상이라지만, 공부와 글쓰기에서 만큼은 "잘"을 빼고 공부하는 사람, 쓰는 사람이라 불러주면 좋을 것 같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정해 놓으면 공부 앞에서 쓰는 일 앞에서 겁먹을 일이 좀 줄어들지 않을까?
글쓰기를 시작한 지 이년 반이 지났다. 쓸 말이 아무것도 없어 한숨만 쉬다가 결국 습관처럼 블로그를 실행시켰는데 이상하게도 하얗게 빈 공간이 글로 가득 차는 날이 많았다. 이렇게 글은 써지는 것인가? 했는데 공작가님은 글은 쓰는 것이라고 하신다. 영감과 생각이 찾아와 써지는 게 글인 줄 알았던 생각에 아주 작은 파문이 일었다. 그리고 그동안의 글쓰기 시간을 되돌아봤다. 생각이 글을 쓰게 만들기보다는 글을 쓰다 보니 생각들이 찾아왔던 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멍하니 깜박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뭘 쓰지?" 했던 답답한 마음을 누르고 한 글자 한 문장을 써 본다. 어떤 날은 완전히 잊혔던 과거의 내가 나타나기도 했다. 사실 A라 여겼던 내가 B였음을 깨닫는 순간도 있었다. 신기하게도 글을 쓰면서 몰랐던 나를 발견한 날이 많았다.
글 쓰는 일은 운동과도 닮았다. 운동은 해야 하는 일이지 해지는 일이 아니다. 저절로 되지 않는다는 점, 할 때마다 어느 정도 고통이 계속된다는 점. 하루 이틀만 놓아도 금방 힘이 빠지고 쌓아둔 게 빠져나간다는 점. 그만하기 쉽다는 점. 오래 시간 꾸준히 해야 하는 일이라는 점. 누구의 도움과 가르침보다는 스스로 해내야 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두 가지 일이 무척 닮았기에 무라카미 하루키는 지금도 글쓰기와 달리기를 함께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는 "잘"을 빼고 쓰는 사람, 달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잘"은 빼고 쓰는 사람으로 남은 시간을 쓰겠다는 다짐을 다시 해 본다. 오랜 시간 꾸준히 혼자서 해내야 하는 조금은 외로운 길이지만,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잘"은 옆으로 빼어 두고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