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살고 싶은 평범한 미래를 상상한다. 일이 너무 바쁘거나 해결해야 할 문제더미 아래서 고통스러울 때,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작은 집 하나를 얻고 자연을 벗 삼아 느리게 가는 삶을 살고 있는 나를 떠올린다. 집은 더없이 작았으면 좋겠고, 살림은 이럴 수 없을 정도로 단출하길 원한다. 문을 열고 나가면 산과 강이 보이고 높은 빌딩과 아파트가 들어설 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곳. 그런 곳에 커다란 텀블러에 따뜻한 커피를 옅게 타고 앉아 빨리 돌아가야 하는 일 없이 한가로이 몇 시간이고 책을 읽을 수 있는 미래를 꿈꿔보는 거다. 그러면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 풀리고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에 하던 일을 마저 끝낼 수 있게 된다.
비가 오면 창가에 바짝 붙어 비를 바라보고 비가 개면 다시 섬진강 가에 의자를 하나 내놓고 모차르트를 들었다. 봄과 섬진강과 햇살과 모차르트는 뭐 하나를 떼어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아침부터 무중력 의자라고 부르는 싸고도 좋은 안락의자에서 반쯤 누워 커다란 잔에 든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며 하늘에서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그것이 지겨워지면 의자를 조금 세워 강을 보고 앉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지영>
이미 그런 삶을 누리고 있는 작가의 문장을 마주하고 나니, 그 모습이 선명하게 눈가로 다가왔다. 반짝이는 섬진강의 빛을 보다가 지겨워지면 하늘에서 흘러가는 구름을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여유. 오늘이 지나면 떠나야 할 곳이라는 야속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찾아오지 않는 게으르고 나른한 오후의 어느 날을 보내고 싶어졌다. 도시의 화려함과 바쁨 그리고 복잡함, 이겨내야 하는 경쟁과 타인과의 끝없는 부딪힘에서 떨어져 나와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는 행운이 나에게도 와 줄까? 그런 궁금함을 품고 위의 문장을 노트에 적었다. 평소 흘겨쓰는 습관을 잠시 접어두고 한 글자 꾹꾹 눌러 알맞은 띄어쓰기와 규칙적인 배열을 지켜가며 내 생각을 그대로 옮겨 본다는 마음으로 썼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문장을 읽었다. 다시 읽어도 좋았고, 또다시 읽어도 따뜻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도달해야 할 이토록 평범한 미래의 모습이 이거구나 했다.
섬진강이 아니더라도, 구례의 하늘 아래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어차피 어딜 가든 우리나라 농촌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으니까. 직장이 있는 이 작은 소도시 외각을 차로 달리다 보면, 몇 달 전 아이들을 데리고 갔던 전북 무주나 경기도 양평이나, 충북의 괴산 등과 똑같은 풍경을 마주하곤 한다. 꼬불꼬불하고 좁은 시골길 양 옆으로 늘어선 논과 밭 그 너머로 보이는 근사한 산이며, 산을 감싸고도는 계곡까지. 한 나라 안의 어느 곳을 가도 비슷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우리의 정서가 닮았다는 증거일 테다. 그러니 어디라도 좋고 어떤 사람들이 살아도 상관없다. 그 미래가 멀지 않기를 바랄 뿐.
공작가님의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본다. 두 가지 문제점을 찾아냈다. 나는 모차르트를 잘 모른다는 것과 안락의자가 없다는 사실. 모차르트 대신 유튜브에 올라온 글 쓰면서 들으면 좋은 음악을 틀어 놓고, 안락의자대신 얼마 전 오빠네가 필요 없어졌다고 준 낚시용 의자가 있으니 그것으로 대신해야겠다. 사실 무엇이 되든 그런 곳이 있고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나는 무척 행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