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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이 있는 일상 Jun 07. 2024

공부는 뒷전이고 머리만 바쁘다.

여기서 고구려의 언어에서는 물을 '매'라 했고, 성을 '홀'이라 했으며, 골짜기를 '단'이라고 했음이 드러난다. 물론 현대의 우리는 고구려 사람들이 '매 홀 단'등의 한자어를 어떻게 읽었는지는 자세히 모르고 있다. 이들을 '매, 홀, 단'이라 한 것은 우리나라의 현대 한자음으로 임시로 읽은 것인데, 고구려 사람들은 현대의 우리와는 다르게 읽었을 것이다. <국어사, 방송통신대>


중세국어와 국어사과목을 통해 옛사람들의 말을 배운다. 어려운 한자로 우리말을 표현하려고 애썼던 그들의 노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지금은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고대 국어에 해당하는 신라어는 특히나 남아 있는 자료가 빈약하다. 백제와 고구려 그리고 신라가 사용했던 언어가 서로 비슷했는지 아니면 완전히 달랐는지도 잘 모르지만, 부여계에서 나온 백제와 고구려의 언어가 비슷했다는 증거자료는 있었다. 자료라는 것도 대부분 한자로 쓰인 것이고 당시의 한자가 지금의 중국어 발음과 똑같았는지 달랐는지도 알 수 없으니, 전해지고 있는 몇 개의 자료마저도  당시의 말소리로 읽어내기는 어려웠다. 지나가 버린 말의 잃음은 무엇을 잃게 만들었을까? 신라사람들의 언어는 지금과 얼마나 다르고 그 다름으로 인해 생기는 세상의 빈틈은 무엇일까? 닿으래야 닿을 수 없는 과거의 사람들이 궁금해진다. 그들의 목소리, 대화, 표정, 비밀스러운 일기나, 혼자만이 간직했던 그림 같은 문자가 알고 싶어 진다. 공부는 멀어지고, 나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서글픔 같은 게 올라와 한숨을 내쉬곤 한다.


작년 가을부터 시작한 방통대 국문학 공부, 무엇을 이뤄보겠다는 목적 없이 단지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인데 간간히 배움의 기쁨을 느끼기도 하지만, 언어사 같은 과목을 공부하다 보면 옛사람들을 알고 싶어 진다. 된소리가 없었던 신라시대 사람들은 지금보다 마음이 더 순했을까? 말은 있지만 그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문자가 없었던 시절, 그 답답함을 어떻게 풀었을까? 한자라는 어려운 문자를 가지고 글을 쓰고 이야기를 지어냈던 사람들은 그 표현의 간극을 메우려고 숱한 밤을 새웠을까? 공부는 뒷전이고 그들의 마음과 삶과 일상이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에세이쟁이들의 병적 집착일지도 모르겠다.


구비문학을 배울 땐, 이야기와 노래와 시를 입으로 전하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실감 나고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 애썼던 그들의 노고 덕분에 그것들은 문자와 만나 글이 될 수 있었고 결국엔 문학이라는 커다란 저장고에 담겼을 거다. 들었던 이야기더 흥미로운 이야기로 바꾸어 다른 이에게 전달했던 사람들 덕에 이야기는 변화하고 발전하고 때로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재창조되곤 했다. 삶의 재미와 즐거움을 추구했던 이들, 더 재밌 이야기를 찾고 또 찾던 청취자들, 이야기를  덧칠하고 결말을 새롭게 다시 써냈던 거리의 창조자들, 그들의 움직임, 소리, 듣기, 표정, 마음 깊은 감동, 무심한 표정들이 한데 어우러져 문학은 나날이 변화하고 쌓이다가 오늘에 이르렀다. 그 장대하고 긴 역사를 통해  마침내 우리글을 가지고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으니, 한글의 창제는 우리 문학에 혁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당시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일이 아난가? 우리말의 역사는 이제 겨우 100년, 한글이 이뤄낼 찬란한 문학이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공부는 늘 뒷전이고 엉뚱한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난다. 나의 국문학은 이렇게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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