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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물고기 Dec 15. 2021

마흔쯤 되어보니 (feat. 생일 단상)

헬로 중년

태어나서 맞는 마흔 번째 생일이다. 이제는 정말 빼박 40대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나도 영원히 호기로운 2030, 세상의 중심에 머물 줄로만 알았다. 아무리 나이보다 몇 년은 어려 보인다는 소리를 많이 듣거나 말거나 내게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중년이라는 시기를 받아들일 때가 왔다니.


하지만 예전의 나와 같이 막연히 중년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인생 후배들을 만난다면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불안한 마음에 지금도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당신의 중년은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고 만족스러울지도 모른다. '나이 듦'이란 젊음을 '잃어버리는' 것만이 아니라, 하기에 따라 삶을 더 소중하게 누릴 줄 아는 능력을 '얻는 것'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적어도 예전의 나보다 더 행복할 줄 아는 법을 배운 것 같고, 나와 같은 경험담도 종종 듣는다.


#오히려 적은 게 낫다#


한 때는 생일이면 으레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랜만에 연락, 많은 선물을 받던 것을 즐기던 때도 있었고, 어떤 때에는 나는 막상 놓칠세라 매번 축하해놓고는 그들에게는 축하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카카오톡 생일 비공개를 시작으로 최대한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가는 쪽을 선호한다. 내가 몇 명에게 축하를 받았는지를 세고 있는 것보다 내게는 오늘도 여느 날처럼 중요하고 시급한 일들이 이미 많기 때문이다.


조직의 리더로서 하루 종일 빡빡히 나의 도움/참여/의사 결정을 기다리며   있는 일들, 하루  얼마  되는 함께   있는 시간 동안 관심을 온전히 받아야 하는 아기, 그리고 내가 반드시 챙겨야 하는 집안 내외의 크고 작은 일들로만도 다른 것에 사치를 부릴 틈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미 빼곡히 차있는 일정 중에 생일이라는 계기 삼아 어쩌다  년에 한두 번 연락 오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예의상의 대화, 뜻하지 않은 선물로 인한 언젠가 되갚아야만   같은 마음의  등을  여유가 없다.


#그럼에도 미소 짓게 하는 것들#


SNS 등의 알림을 받지 않더라도 온전히 나를 기억해주는 몇 명은 어김없이 연락을 해온다.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나는 종종 내가 오늘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누구에게 연락을 할까를 생각해보는데, 아마 내 생의 마지막에 내가 연락할 이들이 아마 그들일 것이다. 이들에게는 어떤 선물을 받아도 크게 부담스럽거나 실망스럽지가 않다. 그리고 이들이 얼마짜리 선물을 했건, 나는 계산하거나 따져보지 않고 기꺼이 그들의 생일 선물을 고를 것이다.


10~20대의 어린 시절에는  사람이라는 숫자가 혹시 너무 적은 것이 아닐까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고 스스로 불안해했다. 하지만 마흔쯤 되어보니 그런 절대적인 숫자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게 남는 사람의 숫자는 내가 감당할  있는 여력이 되는  그만큼인 것이라는 사실도.  삶의 어젠다로도  너무도 빡빡히 바쁜 삶을 살아왔기에 주변에 자주 안부를 하거나 시시콜콜 나누는 소녀 같은 감성을 많이 공유하며 살지 못해  부분에는  결핍을 느껴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시절의 외로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결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중년이 되어서야 가지는 여유#


그렇다고 나는 삶을 단조롭게만 살아가는 것을 선호하지는 않는 사람이다. 연말마다 꽤나 구상을 해서 주변이 훈훈해지는 이벤트를 만들기도 하고, 재미난 거리나 기념할 일을 종종 만들기도 하며 살아가니까.  생일이나 이직, 승진, 포상 등을 기념하며 스스로에게 작은 선물을 하는 짓도 때론 하면서 살아왔는데, 이제 마흔쯤 되니 그런 것이 아니어도 내게 이유 없이 뭔가를 선물해줄 수도 있는 여유가 조금은 생겼다. 마치 가난했던 어린이가  년에  한두  외식을   있던 때에 비해 이제는 부자가 되어 이유 없이도 가끔씩 여유를 즐길  있게 되었다고 할까.


원래가 물욕이 많은 편도 아니었지만, 삶의 모든 것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던 나는  실제보다 마음이 가난했다. 내가 선물에   있는 금액 한도보다  자신에게 지출할  있는 금액 한도는 언제나 터무니없이 낮았고, 스스로에게는 모든 잣대에 있어 한없이 박하게 살아왔다.  그럴싸한 이유와 , 다음 목표가 있었기에  번도 내가 가난해서 부끄럽다거나 초라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내가 자신에게 딱히 핑계를 만들지 않고도 선물을 거나 가끔은 혼자만 있더라도 맛난 것을  먹어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그래도 자주 하진 않지만)



이 글 역시 결국 어제 생일에 마무리짓지 못하고야 말았다. 역시 내게는 글을 이어서 쓰는 것조차 너무 큰 목표이자 사치인 요즘의 삶이랄까. 현재는 새벽에 일어나 곁에서 자던 아기의 기저귀를 살짝 갈고 나와 화장실에 들어와 쪼그리고 앉아 겨우 마무리하는 중이다. 그래도 너무 오랜만에 먹어보는 진짜 샴페인은 달콤하고 꽃은 향기로웠고, 아기는 무한히 사랑스러우며 편지는 훈훈했다. 중년임을 인정하는 일 역시 중년답게 의젓하고 여유롭게, 그리고 행복하게 시작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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