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의 고민
식사 후 소화시키며 동네 한 바퀴 걷는 게 좋다. 남편이 조리해주는 냉동식품에 맥주 한잔 하는 것도 좋다. 사람 많은 곳을 다니기보다 집에서 노는 게 좋다.
적당한 경제활동과 그에 알맞은 소비패턴. 나는 남편에게 나는 지금이 딱 좋고 행복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너무 열심히 일해버리면 살면서 즐겨야 할 많은 것들을 놓쳐 버릴 것만 같다. 그래서 가끔씩은 주문처럼 반복해서 말하기도 한다.
작지만 우리 네 식구(사람 둘, 고양이 둘)가 쉴 수 있는 집이 있고 일하러 갈 수 있는 작은 직장이 있다. 여가시간이 많아서 그림을 그리거나 이렇게 글을 쓸 시간이 있다. 일하는 시간이 작은 만큼 돈은 많이 못 벌지만 쭉 이렇게 소소하게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친구들과 등산을 하다 등산로에 작은 돌탑 위에 돌을 쌓아 올리거나 길가다 재미로 타로점을 볼 때 말했던 것 같다.
더 이상 원하는 게 없어.
친구 중 한 명이 바로 맞받아쳤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거 아니야?” 그때는 부정했지만 사실 반쯤은 동의한다.
더 이상 원하는 게 없다는 건 아마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과시였거나 지금 이대로 만족하겠다는 의지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굳이 주어지는 행운이 있다면 마다 하고 싶지는 않다.
적당히 벌며 소소하게 살고 싶지만 로또 당첨은 꿈꾼다.
남편과 산책할 때 가끔 로또가 되면 뭐할지 진지하게 의논한다. 로또 당첨 이후의 일들을 상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노력 없이 나에게 주어질 것들을 생각하면 신이 난다.
로또가 당첨된다고 해서 당장 일을 그만두거나 홀가분하게 떠나지 못할 수 도 있지만 그동안 애써 외면해 왔던 통념적 기준을 굳이 외면할 필요 없기에 기분은 홀가분할 것 같다.
더 큰집으로 이사 가면 고양이를 위한 캣타워도 하나 더 설치할 수 있을 것 같다. 방하나는 작업실로 꾸미고 남는 방은 취미생활을 할 수 있게 기타나 키보드를 들여놓을 것이다.
그런데 웃긴 건 나는 로또를 사본적이 없다. 로또도 사지 않으면서 로또 당첨을 바라다니 어이가 없겠지만 그냥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로또 당첨은 정말 꿈만 꾼다.
의식주가 해결된 상태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는 스스로의 선택에 위해서 결정되는 것이지만 나약한 내 마음은 때로는 타인의 시선의 의해 흔들릴 때가 많다. 내 삶이 충분히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은 것이다.
타인으로부터의 인정. 그 기준은 돈이다. 운영하는 작은 교습소에 수강생이 많은지 내가 그림을 그리면 돈을 벌 수 있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노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인정받기 어렵다.
돈으로 마음을 살 수 없다지만 어버이날이나 부모님, 시부모님 생신날, 명절에 값비싼 선물에 두둑이 용돈 드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종종 한다.
살면서 가장 인정받고 싶지만 인정받기 힘든 존재가 부모님이었기에 더욱 간절해질 때가 있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한 번은 운영 중인 교습소에 친구를 따라서 온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수업을 듣고 싶어 했다. 처음 한두 번은 그냥 시켜주었다. 마음에 들면 부모님과 상의하겠지 생각했다. 그러다 그 아이의 부모님이 이혼을 했고 할머니께서 키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할머니랑 통화를 했다. 학원을 보내고 싶어도 매달 드는 학원비가 부담스럽다고 했고 나는 물감과 파렛트를 준비해 주면 무료로 수업을 해주겠다고 했다.
이미 큰 상실감을 안고 있는 아이에게 작으나마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무료로 수업한다는 건 비밀로 했다. 하지만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그만두었다. 아마 친구가 다니니까 따라오고 싶었는데 막상 그림 그리는 것은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 후 길에서 가끔 그 아이를 보았다. 태권도 도복을 입고 있었다. 나중에 다른 학부모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경제적으로 어렵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가끔 주변에서 교습소 운영하는 게 봉사활동을 하는 건 아니지 않냐고 말한다. 맞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사교육에 뛰어들었고 지금은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다른 돈벌이를 찾지 못해서 계속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 아이를 금전적으로 도우려 한건 아니었다. 그럴 처지도 못된다. 나는 다만 그 아이가 어른들에게 느끼는 감정이 차갑지만은 않길 바랬다. 가끔은 이유 없는 친절도 존재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나는 내가 어떤 삶을 원하고 살아가고 싶은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아직은 선명하지 않지만 나만의 기준을 조금씩 세워 나가고 싶다. 아직 단단하지 않은 마음이 타성에 휘둘리기도 하지만 곧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꺼라 자신을 믿어본다.
성공을 이야기하는 책들은 너무나 많다. 그리고 그 성공을 쫒는 사람들은 더더욱 많다.
성공을 쫒는 사람들의 이면에는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존재한다. 하지만 일일이 인정받으려 애쓰다 보면 결국엔 무엇을 쫒아갔는지 조차 모르게 된다. 끝도 없이 타인의 기준에 맞추다 보면 결국 길을 잃어버릴 것은 안 가봐도 뻔한 것 아닌가. 그 성공이라는 추상적인 단어가 나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스스로 알아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