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책을 사는 행위의 장점과 단점
적지 않게 책을 사다 보니 책값도 상당히 드는 편이다. 책값이 아까운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책도 물론 있다),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종종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중고책을 산다. 아래에서 상술하겠지만, 책값을 아끼기 위한 이유만으로 중고책을 사는 것은 아니다. 가급적 새 책을 사려고 하지만, 사고자 하는 책이 절판이나 품절 상태라서 부득이 중고책을 사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체로 새것이 오래된 것보다 더 좋지만(과연 그러한가?), 책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1. 책값을 아낄 수 있다.
중고책은 새 책 보다 싸다. (다른 상품과 달리) 중고책도 새 책과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새 책 보다 더 싸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러나 책도 하나의 상품이기에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중고가 신상보다 싸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알라딘 중고서점의 경우, 중고책의 품질은 상/중/하로 등급이 매겨지고, 새 책의 50~60% 정도의 가격으로 판매된다. 알라딘 내에서도 개인사업자들이 중고책을 판매하기도 하지만, 나는 택배비 등을 고려하여 알라딘이 자체 운영하는 '이 광활한 우주점'을 이용한다. 중고책을 사면 책값을 다소 아낄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2. 절판이나 품절된 책을 구할 수 있다.
내가 중고 서점을 이용하는 주된 이유는 절판이나 품절된 책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 책의 가치로 보아서는 절대로 절판이나 품절이 되어서는 안 될 책인데, 시장 상황에 따른 출판사 사정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중고 서점에 있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중고 서점에도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는 출판사에 직접 전화를 하는데, 한길사에서 출판된 로크의 <인간지성론>(여전히 품절 상태다)이나 홉스봄의 시대 3부작(지금은 판매 중이다) 같은 책은 그렇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한때 하이데거의 <니체>도 절판 상태였는데, 그 당시 개인사업자들이 운영하는 중고서점에서 권당 10만 원을 넘나들기도 하였다(새 책은 1권이 38,000원, 2권이 33,000원이다). 웃기는 얘기지만, 중고책 가격을 보면 그 책의 가치가 보이기도 한다. 아무튼 절판이나 품절된 책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중고책을 사는 행위의 최대 장점이다.
3. 마음껏 밑줄을 그으며 읽을 수 있다.
책이 뭐라고, 그래봤자 물건이고, 읽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모셔 두려고 사는 것도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책에 팍팍 줄을 긋기는 마냥 쉽지만은 않다. 작고하신 김윤식 교수님은 책을 읽다가 인용할 대목이 나오면 가위로 오린다고 하셨고, 김상환 교수님은 책을 읽으면서 책에 밑줄도 팍팍 긋고, 메모도 마구 하고, 구기기도 접기도 한다고 하시면서 책이 물리적으로 소화가 되어야 완전히 이해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하신 적이 있는데, 두 분의 태도가 책을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하면서도, 책에 줄 긋는 노력을 해보려고 하다가도 습관이 되어 있지 않아서인지 금세 손에서 펜을 놓고 눈으로만 읽게 된다. 이제 기억력도 점점 퇴화되고 있어 더더욱 책에 줄을 긋고 메모하는 작업이 필요한데도 말이다. 그런데 중고책의 경우, 책에 줄을 긋는 일이 새 책에 비해 훨씬 부담이 없다. 그래서 나는 중고책을 읽을 때는 마음껏 줄을 긋고 낙서도 하면서 그런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 중이다. 중고책의 또 다른 장점이다.
중고책도 책이기 때문에 중고책의 단점은 책의 단점이 될 터인데, (좋은) 책의 단점은 없으므로, 중고책의 단점도 없다. 그러나 중고책을 사는 행위의 단점은 분명히 있다. 중고책을 사다 보면, 오히려 책값이 더 든다. 위에서는 책값을 아낄 수 있다고 해놓고, 이건 무슨 소리인가. 가령 내가 알라딘 합정점에서 정가 2만 원짜리 책을 1만 원에 판매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 책을 장바구니 담에 둔다고 하자. 그런데 2만 원 이상이 되어야 택배비가 없다. 그래서 나는 그 핑계로 2만 원을 채우기 위해 다른 책을 기웃거린다. 그렇게 해서 2만 원을 초과하게 만드는데, 때로 2만 원을 훌쩍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 만약 내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 책을 정가 2만 원을 주고 샀다면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더 이득이다. 그럼에도 2만 원을 맞추기 위해 재미있어 보이기는 하나 꼭 필요하지도 않고 읽을 것 같지도 않은 다른 책들을 더 사게 되는 것이다. 택배비 2,500원을 내더라도 사려고 했던 책만 사는 것도 한 방법은 되겠지만, 사람 욕심이 또 그렇지가 않다. 택배비를 내느니 책을 한 권 더 사자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것이 중고책을 사는 행위의 유일한 단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중고책을 사면 자원 재활용을 하게 되니 환경보호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중고책을 사는 행위가 시장을 교란할 가능성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드문 경우지만, 밑줄이 그어져 있거나 메모가 되어 있는 중고책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드문 경우인 것을 보니 사람들은 책을 읽을 때 생각보다 줄을 안 긋는 것일까?) 다른 사람은 이 대목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군, 도대체 여기에 왜 밑줄을?, 그래도 밑줄 그은 이유가 있겠지 등등 생각하다 보면, 꽤 재미나다. 이름이 쓰여 있는 중고책을 만나는 경우도 있는데, 일면식도 없지만,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는지, 잘 살고 있는지 그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선물로 받은 듯한 중고책도 있다. 그럴 때는 기분이 좀 묘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데, 역시 책 선물은 하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다시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