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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Nov 08. 2021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작년 쓰던 안경을 바꾸고 나서 촛점이 잘 맞지 않아 애를 먹었다. 노안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너무 불편했다. 촛점이 안 맞으니 책을 읽기도 불편하고 TV를 보기도 불편하고.. 몇 번을 안경점에 찾아가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았지만 결국 그냥 불편함을 감수하고 쓰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올해 건강검진을 받은 후 남편과 함께 안과에 갔다. 건강검진 결과때문이 아니라 제대로 시력검사를 받고 안경을 바꿔야겠다 싶어서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녹내장이 의심된다며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는 것이 좋겠다는 소견을 받았다. 몇 년전에 녹내장 검사때보다 상태가 안 좋아졌는데 고도 근시때문인 수도 있지만 확인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였다. 뭐 그런가 보다. 요즘은 건강검진을 받으면 멀쩡하다는 소견보다 전문의와 상담하라거나 6개월 뒤 추적조사 요망이 주로 나오다보니 왠만해선 놀라지도 않는다. 30대때 이렇게 나오면 큰 병 생긴줄 알고 놀라서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는데 지금은 ‘큰병도 아닌데 뭐..’라며 병원은 커녕 다음 번 건강검진을 기다리는 무던함을 장착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냥 지나치려는데 남편의 잔소리에 결국 큰 병원을 예약했다. 아~~ 귀찮아.


퇴근을 하고 지하철을 갈아타고 버스를 타고 병원에 도착.  예약 시간보다 30분을 더 기다려 의사쌤을 만났다.

“건강검진에서 녹내장 의심이 간다고 했다고요?”

“아니요. 그건 몇 년 전이고..”

“그럼 왜 오셨어요?”

음.. 불친절한 의사쌤같으니라고..

“일단 녹내장 검사 해볼께요.”

또? 지난 번 병원에서도 했는데..

뭔가 낚인 것 같은 찜찜한 기분으로 또 녹내장 검사를 하고 일주일 뒤 검사 결과를 보기 위해 예약을 또 했다. 아~~ 짜증.


일주일 뒤 다시 병원을 방문했다.

30분 일찍 도착했는데 환자가 별로 없어 10분만에 진찰실 입성. 신난다~~

지난번 불친절했던 선생님이 나를 보시더니 목소리를 높여 왕친절하게 말씀하셨다.

“어머니, 녹내장 초기 맞아요. 아주 초기라 걱정은 안 하셔도 되세요.”

“네.”

다시 목청껏 친절하게 말씀하셨다.

“아주 초기라 약 잘 넣으시면 괜찮으세요. 걱정마세요.”


이제 장기 환자가 되서 그런가 의사쌤은 지난 번과는 다르게 과잉 친절을 베푸셨다. 다시 목청 높여 말씀하시는 의사쌤.

“약만 잘 넣으시면 더 진행 안되고 일상 생활도 아무 문제 없어요. 걱정마세요.”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을 계속 하시니 걱정을 해야 하는데 안 하는 건가 싶은.. 걱정이 들었다.

“약 처방해 드릴테니 하루에 두 번 넣으시고 한 달 뒤에 안압이 낮아졌는지 확인할께요. 너무 걱정마세요.”


누가 들으면 내가 엄청 걱정하는 줄 알겠네. 그나저나 왜 저렇게 큰 소리로 말씀을 하시지? 눈이 나쁜 거지 귀가 안 들리는 건 아닌데.. 그러다 번뜩 든 생각.

 늙어보이나?’



돌아오는 길 녹내장을 검색했다. 백내장, 황반변성과 함께 노인성 3대 안과 질환 중하나랬다. 힝~~ 노인성. 마음보다 먼저 늙어가는 몸이 슬픈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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