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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Nov 09. 2022

작은 선물의 기쁨



이른 토요일 아침, 집을 나서는데 아파트 공동현관문 앞에 얇은 택배 봉투가 던져져 있었다.

‘누가 훔쳐가면 어쩌려고 저기다 던져두고 갔대.‘

나는 카페에 노트북이나 핸드폰을 두고 자리를 비워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 나라가 한국이라며 놀라워하는 외국인의 반응을 찍은 유튜브 영상을 보며 ‘진짜?’라는 의구심을 품는 사람인지라 최소한의 보안장치(?)도 없는 곳에 놓여있는 택배를 보면 늘 분실 걱정이 먼저 되곤 한다. 서로 믿을 수 있는 사회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세상이 어디 내 맘 같은 사람만 모여 있는 곳인가..


그런데 앞서 가던 남편이 자연스럽게 택배를 집어 들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뭐야?”

“우리 꺼야.”

“응? 우리께 왜 저기에?”

“아마존에서 어젯밤 10시에 배송 출발이라고 하더니 밤에도 배송하나 보네. 뜯어봐. “

보통은 집 앞으로 배송이 되는데 새벽에 배달을 오셨었나 보다. 우리껀데 괜히 오지랖 부렸네.


미국에서 배송되어 온 얇은 택배 봉투는 한눈에 봐도 거의 비어 있었다. 한쪽 끄트머리에 작은 무언가가 들어 있는 것 같은데 요 작은 걸 이렇게 큰 봉투에 넣어야 하나. 암튼 아마존은 포장이 너무 과하다. 나중에 병원 다녀와 뜯어도 되는데 굳이 차 안에서 뜯어보라는 남편의 성화에 택배 봉투를 여니 작디작은 박스가 나왔다.

“이게 뭐야?”

”립스틱 하나 샀어. 너무 빨간가? 발라봐. “

어이쿠..

리액션 고장.

좀 과장되게 놀라고 좋아하는 리액션을 했어야 하는데 난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리액션을 하는데 너무 약하다. 나무늘보처럼 반응이 느려서 그런가.. 잔뜩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내며 친절하게 거울까지 내려주는 남편의 성화에 맨 얼굴에 립스틱을 발랐다.

“어때?”

“이쁘네. 생각보다 안 빨간데? 잘 쓸게. “

“빨간색은 아냐. 스위트 사쿠라야.”

정면을 바라보며 운전하는 남편의 얼굴에 뿌듯함이 묻어났다. 아마 남편 눈에는 립스틱의 색깔이 전부 똑같아 보였을 터다. 나도 그러니까. 할인쿠폰을 쓰기 위해 관심도 없는 립스틱 색상을 고르느라 애썼을 남편을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코로나 이후 내가 립스틱을 안 바른다는

건 중요치 않았다. ^^



선물은 현금이 최고라는 시대적 흐름에 편승해 나 역시 대부분의 선물은 현금으로 퉁친다. 현금 선물은 나에게는 시간과 수고를 낭비하지 않아도 돼 좋고 상대방에게는 필요치 않은 예쁜 쓰레기를 모으는 대신 한 사람에게 받기에는 너무 고가인,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는 현금을 확보할 수 있어 좋다. 처음엔 그랬다. 물론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하지만 선물을 고르는 동안 갖게 되는 서로에 대한 관심은 줄어드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특별한 생일선물보다 평범한 일상 속 남편이 주는, 가끔은 예쁜 쓰레기가 되는 작은 선물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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