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경자 Mar 03. 2023

64일 차 : 이모님과의 이별

갓 태어난 아기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그전까지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말이다. 그런데 을 하고 나니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었다. 산후도우미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보조금이다. 산후도우미 지원을 국가에서 해주다 보니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으로 3주 간의 산후도우미 서비스 신청이 가능하다. 저출산의 대책으로 이런 사업을 하는 것 같은데, 이건 할 말이 많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어쨌든 소득에 따라 차등은 있지만, 3주 동안 산후도우미를 활용한다는 것이 주는 이득은 매우 큰 반면, 비용은 적게 들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두 번째는 핵가족 시대의 영향이다. 독립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요즘 세대들은 육아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이나 서적을 통해서만 배우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유리하지만, 실제 실습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당장 아이 목욕시키는 법은 유튭에 많이 나와 있지만, 뭐든 직접 해보는 것만은 못한 셈이다. 산후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하면 옆에서 하나하나 직접 시범을 보여주시고, 경험에서 나오는 여러 꿀팁도 알려주시니 육아가 막막한 초보 엄마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세 번째는 초기 육아의 어려움인 수면 시간의 확보다. 사실 도우미께서 요리도 해주시고 빨래도 해주시지만, 그것보다는 그 덕분에 엄마들이 충분한 수면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 더 장점이다. 수유 덕분에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하루 종일 자다 깨다를 반복하게 되는데, 도우미께서 계시는 시간 동안은 그래도 몇 시간 꿀잠을 잘 수 있다. 우리의 경우 부득이 외출을 해야 될 상황도 있었는데, 이모님 덕분에 가능했다.


물론 이런 장점들은 가까운 가족의 도움으로도 해결이 가능한 것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어느 한쪽의 부모님이 주하는 것은 상대 배우자에게는 부담이기도 하고, 사소한 집안일을 거리낌 없이 부탁드리기가 쉽지도 않은 일이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도우미 이모님들과 지내는 것이 어쩌면 더 편한 부분도 있다. 하여간 이래저래 요즘은 거의 도우미 이모님들을 더 선호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


세상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다. 산후도우미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우선 국가에서 지원을 하면서 도우미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수요가 느는 속도에 비해 공급이 늘 수가 없다 보니 검증되지 않고 경험이 없는 도우미 이모님들이 일부 계시다고 한다. 지방의 한 도시에서는 지차제 예산으로 전액 지원을 하고 있는데, 그 덕분에 이모님과 관련된 문제들이 최근 늘어났다는 기사를 보았다. 물론 일부의 문제이겠지만 아무래도 부모의 입장에서는 신경 쓰이는 일이다.


그 외에도 낮에는 이모님께서 직접적으로 육아를 담당하기 때문에 부모의 육아 방침을 고수하기가 어렵기도 하다. 이모님 입장에서는 집안일과 육아를 병행해야 하니, 낮에 아이들을 주로 재우는 경향이 있다. 이런 부분부터 시작해서  수유텀이나 수유량에 대한 것도 그렇고, 잠을 재우는 방식이나 목욕하는 방식도 의외로 갈등이 생기는 부분이다. 사소하게는 젖병을 씻는 방법까지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주변에서 산후도우미 분들과의 마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잘 맞는 도우미 분을 찾기 위해서 여러 번 변경 신청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도 들었다. 세상에 마냥 좋은 것은 없다지만, 아무래도 작고 소중한 아기를 맡겨야 하는 분이기에 서로서로 너무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 큰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동네 커뮤니티에서 추천 글을 보고 사전에 연락을 드려서 미리 예약을 잡았다.


추천글을 보고 미리 연락을 드리긴 했지만 사실 첫날 오시기 전까지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마침 비슷한 시기에 뉴스에서 산후도우미가 거실에서 아이를 학대하다가 CCTV에 찍혔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걱정 반 기대 반의 심경으로 드디어 첫날 이모님과의 만남. 이모님을 보자마자 와이프와 동시에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그냥 딱 보아도 너무 좋은 분이셨기 때문이었다.


아이에게 먼저 정중하다고 할 만큼 인사를 건네시고는 순식간에 집안일과 육아를 해치우셨다. 게다가 자고 있는 아이 옆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동화책을 읽어 주시기 까지 했다. 집에 생기가 돌았고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 부부가 살던 것보다 더 높은 삶의 수준을 누릴 수 있을 정도였다. 아이가 자고 있는 퇴근 시간에도 항상 아이 옆에 가셔서 인사를 건네고 들어가셨다. 이모님의 육아는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우리 부부가 코로나 확진이 되면서 본의 아니게 이모님의 휴식 기간이 길어지게 되었다. 일을 해야 월급을 받으시는 이모님의 특성상 우리로 인해서 월급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효과가 생겨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약간의 불만이나 불편한 기색도 보이지 않으셨고, 오히려 우리와 아이의 건강을 늘 염려해 주셨다. 우리도 이모님의 다음 예약까지 2주 정도 공백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 기간 동안 연장을 부탁드렸다.


이모님의 마지막 날은 눈물 파티였다. 이래저래 두 달 이상을 함께한 이모님께서도 우리 아기와 헤어지는 것이 무척 서운하셨던 것 같다. 끝내 눈물을 글썽이면서 퇴근하시는 이모님을 보는 우리도 마음이 한 동안 허전했다. 매일 냉장고에 붙인 철판에 음식을 적어서 부탁드렸는데, 며칠 동안은 칠판만 봐도 가슴 한편이 허전할 정도였다.


이모님이 돌아가신 후 우리 집은 다시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주말엔 내가 어떻게든 집안일을 거든다고는 하지만 이모님의 반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먹는 음식은 다시 성의 없는 인스턴트와 배달 음식들이 늘어났고, 집안은 여러 물건들로 정신없는 상태가 되었다. 며칠 전에 거실 화장실 수납장을 열어보니 이모님이 고이 접어서 넣어두신 수건 몇 개가 있었다. 잘 지내시려나. 하는 찰나에 연락이 왔다.


우리 아기가 잘 지내고 있냐고 생각이 났다며 문자를 보내셨다. 우리도 새로 가신 곳에서는 잘 계시냐며 안부를 여쭈려다 말았다. 분명히 이모님은 그곳에서도 아기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잘 돌보고 계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기와 관련해서 돌아보면 걱정이 무색할 만큼 늘 감사한 일들이 이어진다. 이것도 아기가 가지고 태어난 복인가 싶다. 늘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47일 차 : 정 붙이면 안 되는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