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일 차 : 아빠의 초기 육아가 중요한 이유
엄마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아이와 10달 동안을 한 몸으로 지낸다. 그 과정에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아이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 덕분에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는 이미 아이를 책임질 몸과 마음의 준비가 어느 정도 되어 있다. 그런데 아빠는 그렇지 않다. 이성적으로는 자신의 아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마음속 깊은 무의식에서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아빠의 입장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아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빠들은 처음 아기를 대하는 그 순간이 낯설다.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를 위해서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혼자 아이를 봐야 하는 상황이 되면 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본능적인 저항이 올라온다. 이건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아이가 싫다는 감정과는 전혀 다르다. 오히려 이 아이를 내가 잘 볼 수 있을까, 아이에게 실수를 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과 가깝다. 아이와 거의 한 몸처럼 지내던 엄마와 달리 아빠들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아이가 '부담'스럽다.
굳이 비유하자면 친구관계와도 비슷하다. 엄마에게 아이는 고향에서 초중고를 같이 다닌 친구 같은 존재다. 서로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서 어색함이 없다, 성인이 되어서 서로 연락이 뜸해지고 오랜만에 만나더라도, 한 동안 서로 아무 말 없이 있더라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그런 친구들 말이다. 반대로 아빠에게 아이들은 성인이 된 이후에 만난 사회적인 친구들 같은 존재다. 친하긴 하지만 조금만 연락을 하지 않거나 자주 보지 않으면 금방 멀어져 버린다. 그래서 성인이 된 뒤에 만난 친구들은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 부던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표현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육아에도 골든타임이 있는 것 같다. 성인이 된 이후에 만나서 끈끈한 관계를 맺게 된 친구들처럼, 초기에 집중적으로 정서적 교감을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쉽게 친해지기가 힘이 든다. 게다가 이런 부담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게 되는데, 아이에겐 엄마라는 훌륭한 대체재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더 편한 쪽으로 급격하게 무게의 추가 기울게 되고, 아빠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쪽으로 합리화를 하게 된다.
독박육아라는 말이 탄생한 데도 이러한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빠들이 육아에 참여하는 물리적 비중이 적은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정서적 거리감도 분명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온몸으로 아이에게 빠져든 엄마의 입장에서는, 아이를 대하는 아빠의 태도에서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그 빈자리를 메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깊은 서운함을 느끼게 된다. 이 거리를 처음에 좁히지 못하면, 이후에는 아무리 육아에 참여해도 그 서운함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길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원래부터 아이들을 좋아하고, 주변 지인들의 아이나 조카와도 노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정작 내 아이가 태어나자,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마냥 반갑지 만은 않았다. 갑자기 떠안게 된 부담감이 생각보다 내 마음속에서 큰 저항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후 다행(?)스럽게 도 3주로 늘어난 출산휴가와 코로나 확진으로 인한 휴가, 그리고 설 연휴를 지내면서 아이와 급격하게 친해지게 되었고, 이제는 엄마가 없어도 내가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것에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물론 여전히 엄마와 아이가 보내는 그 자연스러운 일상에 비할바는 안 되는 것 같지만 말이다.
물론 이런 참여에도 불구하고 결국 주양육자의 역할은 엄마가 맡게 된다. 그것이 여러모로 자연스럽고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의 현실에서 아빠가 엄마와 동등하게 육아에 참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게 바람직하냐 와는 별개로) 그래서 우리는 큰 규범을 정했다. 주양육자는 엄마가 맡는다. 아빠는 대신 엄마의 양육(?)을 책임진다. 청소와 빨래, 식사 준비처럼 이모님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가 잠깐 낮잠을 자는 동안 아빠는 아이를 돌본다. 이렇게 규칙을 정해서 시행하니 자연스럽게 역할 분담도 되고, 서로가 화목하게 지낼 수 있었다.
길게 썼지만, 결국 육아는 3명의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관계의 문제가 큰 것 같다. 태어나면서부터 환상의 커플이 된 엄마와 아이 곁에서 아빠가 느끼는 주말드라마급 심리변화가 그것이다. 세상 제일 사랑하던 와이프를 어느 날 갑자기 아이에게 빼앗긴 아빠. 그러나 그 아빠는 아이가 어색하고 서먹하기만 하다. 용기를 내어서 아이에게 다가가 보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를 대신할 수가 없는데... 그런 아빠를 서운하게 여기는 엄마. 아빠는 이제 어떡해야 하나? 뭐 이런 이야기 말이다. 그래서 추천한다. 아빠는 초기 육아에 전념하자. 아 물론 대상은 아이가 아니라 엄마(와이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