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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해주 Sep 17. 2022

먹고 사느라 바빠서 미안합니다

"고모, 잘 지내셨죠? 추석에 인사한다는 게..."


깜빡 잊었다.


"아니야~. 연락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죄송해요, 먹고 사는 게 뭐라고 그게 바빠서..."


친척들에게 추석 연휴 인사를 하는 것. 그랬다. 바쁘고, 치이고, 진짜 먹고 사는 게 급급해서 까맣게 잊었다.

살다 보면 그렇지, 그런 게 뭐 그리 대수일까 싶겠지만 이게 사는 정 같은 게 아닐까.

자주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따금도 아니고. 그래봐야 일 년에 한두 번 명절 연휴라거나 생일 같은 기념일을 챙기거나.

나한테도 식구가 있다는 담백한 마음의 울림이 있는 날들이니까.

여기에서 약간의 씁쓸함은 그런 거다. 꼭 이런 날이 닥쳐봐야만 알 수 있는 감정이랄까. 뭔가 주변을 챙기고 돌아봐야 하는 시점이 생기면 나의 지난날을 되돌아 보게 되는.


"세상 최고 바쁜 장해주"

"너는 좀 쉬어~. 너무 달렸어."

"요즘도 많이 바빠?"

"너 진짜 AI 같아. 내 주변에 안 쉬는 사람 세 손가락 안에 꼽아."


그렇게나... 바빴나? 싶다가도, 또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최근에 책 작업과 동시에 방송을 두어 개 하면서 1년 동안 애써서 찌운 6KG의 살을 두 달 만에 4KG이나 홀라당 까먹는 효과를 가져왔으니까.

몸은 한 개인데 할 일은 태산이니 어쩌겠나. 잠 자는 시간 줄이고, 밥 먹는 시간 줄이고.

그렇게 내 몸은 또 뼈만 남아가고.

워커홀릭.

내가 즐겨 하는 말이기도 하고, 남들이 나를 볼 때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일 하는 거 좋아하고, 일 할 때 행복한 것도.


그런데 나도 워커홀릭이 되고 싶어 된 건 아니다.

혼자 벌어서 내 삶을 지탱하려면 되고 싶지 않아고 되어야만 하는 게 워커홀릭이니까.

누가  먹여살릴 것도 아니고, 비빌 언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만 있는다고 하늘에서  벼락 같은  떨어질 리가.

그런 허무맹랑한 일이 있을 리가, 없지.

내 삶은 그랬으니까.


어느 날 만 나이를 없앤다는 발표가 나왔을 때 주변에서는 그랬다.


"생일 안 지났으니까 그럼 두 살 어려지는 거야?"

"완전 좋아~. 어려졌다!"


어려지긴 개뿔. 생일이 안 지났으니까 두 살 덜 먹는 게, 그래서 뭐.

돌아간다고 뭐 달라지나. 이미 살아본 나이, 다시 사는 게 나는 그렇게나 지겹게 느껴지는데. (네거티브가 아니라 그저 저자의 가치관과 생각일 뿐이다.)

어차피 오늘이 제일 젊고 싱싱한 인생. 숫자가 더 어려진다고 내 생체리듬이 나이만큼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지금이 최고로, 최상으로 좋은데 말이다. 나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20대로, 혹은 10대 교복 입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데 나는 아니다. 10대도, 20대도, 지금도... 사는 게 여전히 치열하다. 20대는 더할 나위 없이 피 터지게 치열했더랬다. (물론 지금은 그때보다야 좀 나아지긴 했다만. 훌쩍.)


먹고 사는 거에 치여서 점점 놓치는 게 많아진다는 게 참 싫다는 생각. 좀 덜 놓치고 조금은 야무지게 잘 여며서 가고 싶은데 말이다. 여전히 치이는 게 많아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거나 외면하거나, 그래서 잊거나.

사람이 사람한테 이래서 쓰겠냐?! 자조 섞인 말 끝에, 속상한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며 스스로를 또 다독여본다.

그래도 이만큼 사느라 애썼다고.

이 글 끝에, 먹방 사진이 여럿 보여 올려본다.

나 이만큼이나 잘 먹고 잘 살았다고.

놓쳐버린 나의 시간과 날들에게 이런 말을 고하며.


"먹고 사느라 미안하다! 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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