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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비 May 27. 2019

위저드 베이커리

구병모 지음 / 창비

출간 10주년 기념 교보문고 단독 한정판 리커버





나는 '즐거운 독서'를 위하여 나만의 책 선택 기준이 있다.


책에 끌릴 것.


물론 '끌린다'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선택의 기준에는

수 없이 많은 내·외적 요소들이 '끌림'이라는 단어 안에 꾹꾹 눌러 담겨있다.


그리고 이 <위저드 베이커리>는 많은 요소들이 충족되었던 책이다.


강렬한 붉은색 양장 커버와 금빛으로 포인트를 준 빛나는 제목.

책 제목은 판타지스럽지만 국내 작가님.

한정판.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과 휴대가 용이한 책의 크기.

그 날의 기분과 컨디션.

 …….


'즐거운 독서를 위한 책'을 선택할 때는,

책의 내용이 선택 요소에 들어가지 않는다.


소개를 읽거나 평점을 보며 책을 먼저 파악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로지 제목만이 나에게 주어진 힌트이며,

책에 나올 모든 이야기들은 가능성으로 열려있고,

그중에서 책의 제목과 가장 어울리는 내 머릿속 상상력으로 추리를 시작한다.


내 삶의 경험들이 기준이자 바탕이며,

제목과 가장 잘 부합되는 선입견과 편견들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

이 책을 내 마음대로 재고, 측정하고, 잘라본다.

그리고 내 상상과 실제 책이 보여주는 이야기와 비교해본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책을 샀던 그 날.

나에게 무척 끌리는 책이었다.


달콤한 빵과 디저트로 가득할 것만 같았던 책.

날카로운 손끝으로 가른 책 속에는

잔혹하고 무겁고 아픈 이야기가 달콤한 팥 대신 앙금으로 들어있었다.






'나'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상황들 속에서 발생된 너무나 많은 감정들과 생각들을

모두 마음속 밀폐용기에 담아 보관하기로 결정하면서,

점차 말이 몸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말의 미숙함으로 인해 외부에서 겪게 되는 부정적인 경험들

내부에서 솟아 나오는 부정적인 생각들은

말의 입구를 더욱 빠른 속도로 좁아지게 했다.

결국 닫힌 입에서는 침묵. 또는 완성되지 못한 문장들이 단어 부서지고, 뒤섞여 입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철저한 현실 속에서 버텨오던 '나'는

극적인 사건과 함께 집 밖으로 뛰쳐나와 <위저드 베이커리>로 도망치게 되면서,

환상 같은 마법의 세계로 들어간다.



버스정류장 옆 동네 빵집인 <위저드 베이커리>에서는

온라인으로 마법 물품들을 판매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에게 실수를 하게 만드는 '악마의 시나몬 쿠키'

중요한 날 마인드 컨트롤을 도와주는 '마인드 커스터드푸딩'

먹고 잠들면 내가 가기 싫었던 학교나 회사에 또 하나의 내가 대신 가주는 '도플갱어 피낭씨에'

...


독특하고, 다양한 마법 물품들을 온라인으로 아주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위저드 베이커리>에서는 손쉬운 구매를 제외한 모든 것에서 신중을 요구하고 있다.


회원가입 안내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모든 마법은 자기에게 그 대가가 돌아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자신의 행위로 인한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 분만 가입하시기 바랍니다.


각 물품들의 맨 마지막 줄에는 경고문도 적혀 있다.

긍정이나 부정, 자기가 바라던 어느 쪽의 변화든 간에 이것은 물질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비 물질계의 질서에 변화를 일으키는 일입니다. 따라서 모든 마법의 이용 시 그 힘이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하십시오.


또한 물품들이 제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정성과 진심을 담을 것을 요구한다.



행동은 항상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라는 말은 누구나 알고 있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지만. 그저 형식적인 글로밖에는 읽히지 않는다.

하물며 마법 물품이라는 이상한 컨셉의 베이커리 온라인샵의 회원가입 안내문경고문에 적힌 글을 보고

어느 누가 무겁고 진중하게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재미와 호기심, 가벼운 마음과 생각으로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히는 마법 물품들을 구매하고 사용한 고객들은

이로 인해 겪게 된 막중한 결과와 책임들을 짊어지고 위저드 베이커리를 찾아온다.

당신들의 상품으로 인해 발생된 원치 않은 결과였으며, 책임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몸부림이었다.


마법 물품을 구매한 사용자의 머릿속에는 계획과 행동, 그리고 결과가 존재한다.

저주를 걸고자 하는 대상과 저주에 걸리길 바라는 마음, 음식을 먹여 저주를 걸 계획은 치밀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로 인해 가져올 결과와 그 이후 미래에는 얼마나 준비하고 있었을까?



만약 중요한 시험 전에 '악마의 시나몬 쿠키'를 먹게 되면 어떤 실수를 하게 될까?

갑자기 콧물이 멈추지 않아 시험에 집중이 안되어 쉬운 문제를 틀리는 실수도 할 수 있고,

공부했던 것들이 기억이 나지 않아 시험을 망칠 수도 있고, 답안지를 밀려 쓰는 실수를 하거나,

실수로 생리현상을 컨트롤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실수로 다른 시험장에 갔을 수도 있고,

신분증을 실수도 챙겨 오지 못했거나, 실수로 시험 당일 늦잠을 잤을 수도 있겠다.


그러면 그 실수에 대한 결과는 어떻게 될까?

앞으로 삶을 살아가는데 얼마나 중요한 시험인지, 이 시험을 합격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이 들어갔는지, 나와 시험과 주변인들과의 관계에 따라 수없이 다양할 것이다.

실수를 딛고 일어날 수도 있고, 금전적·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더 이상 시험을 칠 수 없을 수도 있고,

시험에 대한 트라우마가 평생 따라다닐 수도 있고, 극단적으로는 자살을 선택할 수도 있겠다.



마법에 걸린 당사자가 어떠한 선택을 했을 때,

그리고 그 선택에 의해 완만하거나 극단적이거나. 혹은 그 사이 어딘가의 결과가 나타났을 때.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위저드 베이커리>에서는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마법을 이용한 당사자이다.


이것은 선의나 악의에 상관없다.

행동 이후의 결과나 그 후의 미래는 누구도 준비할 수 없고, 누구도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책임은 대상자와 그 주변 사람들이 함께 진다는 것이다.



'나'는 점장의 보호 아래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지내게 된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현실과 환상 겹쳐진 공간이다.

문 밖으로 나가면 현실이, 빵집 깊은 곳에는 마법사의 방이 있다.

현실과 맞닿아있지만 동떨어진 마법의 공간.

하지만 완전한 단절은 아닌 곳.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나'는 점차 성장한다.

냉소적이고 부정적이고, 자기혐오적이었던 생각들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다.


점장과 파랑새와 함께 여러 가지 상황들을 겪고, 대화를 하면서

과거에 대한 변호, 절망, 괴로움, 보다는

이전까지 마음속에서 끝나버리고 말았던 것들에 집중하게 된다.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고 싶은 감정을 생각하고 내뱉고 표현한다.


슬픔, 분노, 연민, 미안함, 고마움, ….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과, 나의 말을 들어주는 주변 사람들을 찾게 되면서

더 이상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도망치지 않고 맞서게 된다.


하지만 공간적인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나의 생각과 말은 마법사의 영향이 끼치는 공간 안에서 보다 자유롭다,

비 현실적인 공간에 믿음과 신뢰가 집중되어 있다.

현실은 여전히 누명에서 도망친 그 순간 그대로.

아무것도 바뀐 것 없이 얼어붙은 그 상태로 나를 기다린다.

두렵고, 무섭고, 복잡하다.



경찰이라는 현실이 빵집 문을 열고 들어온 순,

나는 어쩔 수 없이, 완전히 준비되지 못한 상태로 환상에서 벗어난다.

마법사의 선물과 함께.


꽤 많은 시간이 지나 도착한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시원한 해소와 결말이나 마법 같은 극복이 아닌,

더 어둡고 추악한 현실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여전히 마음속의 을 입 밖으로, 현실로 가져올 수가 없다.

가져온 것은 마법사가 건네준 빵 봉투뿐.


현실은 항상 내가 준비하기도 전에 선택을 요구한다.


추악한 고름이 터지며, 나는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고.

선택은 Y와 N의 행동으로 엇갈리게 된다.



과거를 직시하거나 현재를 직시하거나.


선택은 나의 몫이다.

그리고 결과 또한 나의 책임이다.




1.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최선의 선택, 차선의 선택이 있을 뿐

완벽한 선택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최선과 차선의 선택 또한 쉽지가 않을 것이다.

머리를 쥐어짜 내어 수많은 경우의 수와 결과들을 예상하고도

결국 원하는 방향으로 결과가 흐르던 적이 얼마나 많던가?


이에 더해 가벼운 선택을 하기가 쉬워진 세상이다.

정보와 지식들이 지천에 널려있고,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가감 없이 드러나있는 공간이 존재한다.

나는 그 공간에서 옷장에서 유행하는 옷을 골라 입듯이

내 지식인 것처럼, 내 생각 것처럼  다른 사람의 결과물을 덧입는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맞춰 생각이나 선택 또한 가속도를 얻었다.

손끝으로 언제 어디서든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되었다. 시공간의 제약이 점차 사라진다.

중심을 잡지 않으면 이 큰 흐름에 휩쓸려 나 또한 빠르게 흘러가버린다.


<위저드 베이커리>에서는 이러한 문제점들 중 한 부분을,

인간의 욕망이나 악의가 쉽고 빠르게 현실로 구현되는 것을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매하는 마법 물품들로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마법 물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달콤한 디저트에 날카로운 악의를 숨겨 상대방의 무방비한 내면을 찢고 할퀸다.


욕망이나 질투, 사연이나 후회 없는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더 좋은, 더 나은, 더 높은 것들을 향한 소망을 넘어선 욕망과 질투.

내 행동에 대한 결과를 맞닥뜨리며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후회.

되돌리고 싶은 과거들.


소설 속 사람들은 <위저드 베이커리>를 찾아와 저마다의 사연을 이야기하며 후회한다.

심지어 절대자인 마법사 조차 지난날의 자신의 선택을 후회를 한다.


그러나 마법사는 자신의 후회를 없었던 것으로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틀린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게 아니야. 선택의 결과는 스스로 책임지라는 뜻이지."


우리는 결과를 바라보며 선택에 대한 후회에만 집중하고 있지는 않을까.

선택과 결과 이후에 그다음에 더 마음을 써야 하지 않을까.



2.

<위저드 베이커리>를 읽으면서 소설 속에서 내가 바라는 것들을 볼 수가 있었다.

당장 해결하거나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는 마법 같은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감당할 수 있겠다고 생각되는 부분에서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판단을 하길 바라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편하고 쉬운 것들만 골라내려는 마음과 바람이 있다.


소설 속 결말의 분기점에서 나는 당연히 현실이라는 선택을 바라고 있었다.

현실적인 선택 속 마법 같은 상황을 원했다.

도망칠 곳 없는 상황 속에서 상처를 극복해내는 주인공, 내지르는 강한 외침, 극적인 결말.

도망치지 말고, 선택하고, 책임지고 감당하라!


분기점을 지난 두 세계 모두는 내 바람과는 같지 않았다.

폭발하고 터뜨리고 해소되는 그런 마법 같은 결말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으로써, 그리하여 그다음에 대한 이야기들이 심심하거나 담담하게 풀어 나오면서

어떤 매듭은 묶여있는 채로, 어떤 것은 풀린 채로.

그렇게 그대로 이어진다.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삶에서 모든 매듭과 문제들이 전부 시원하게 풀리는 것이 가능할까?

책이 내게 질문하는 것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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