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때 연합고사를 100여 일 앞둔 날이었다. 연합고사는 고등학교 입시시험이었는데 인문계와 실업계 학교의 진로를 정한 후 시험을 봤다. 한 학교에서 3-5명 정도씩을 인문계고 탈락자가 나오기도 했다. 대입시험만큼은 아니지만 신경이 좀 쓰이는 시험이었다. 그래도 시험이 시험인지라 공부도 챙겨서 했고 시험에 대한 특별한 준비를 하기도 했다. 그것은 바로 백일주(百日酒) 주였다. 시험 100일을 앞둔 D-day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기 전, 이제 100일 동안 놀지 못하니까 백일주를 마셔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3 언니, 오빠들이 하는 문화였는데, 중3인 우리들도 따라 해 보기로 했다. 당시에는 청소년이 술과 담배를 사는 것에 대한 법적 제재가 지금보다는 느슨했다. 물론 금기였지만, 우리는 장난스러운 일탈처럼 받아들였다.
친하게 지내던 아이들 6-7명 정도가 하교 후에 근처 공원에 모여서 작당을 했다. 어디서 모일지부터가 문제였다. 공원이나 친구집 등이 아이디어로 나왔다. 하지만 공원은 보는 눈이 너무 많았고 친구집도 마땅치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술집을 가기로 했다. 친구는 자기가 가봤던 곳이 있다면서 그곳에 가자고 했다.
주말에 친구가 가본 그곳 앞에 모였다. 술집을 가기로 한 시간은 낮 1시였다. 우리가 모인 곳은 다름 아닌 경양식집 앞이었다. 이상하다는 것을 이때는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유경험자 친구를 따라 긴장한 내색을 숨기며 지하 식당으로 들어갔다. 경양식집은 칸칸이 룸이 있는 폐쇄적인 곳이었다. 낮에는 식사류를 팔고 저녁에는 호프집이 된다고 했다. 안내받은 룸으로 들어가자, 많이 봐야 20살 초반으로 보이는 잘생긴 오빠가 메뉴판을 건네주었다.
메뉴판을 보며 얼마간 침묵이 흘렀다. 도저히 대낮에 술을 시킬 수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주류가 아닌 식사류에서 먹을 것을 골랐다. 술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우리는 술을 먹는 것은 고사하고 시키는 것조차 무서웠던 것이다. 우리가 눈알을 굴리며 뭔가 망설이고 있는 눈치를 보이자 잘생긴 웨이터 오빠는 자리는 비켜주었다. 웨이터가 갔지만 우리는 여전히 긴장하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우리가 맥주를 시키면 뭐라고 하지 않을까?" "그냥 여기서는 밥만 먹고 가는 게 어때?" 우리는 그렇게 백일주를 포기하고 돈가스, 생선가스, 함박스테이크 등을 골고루 시켜서 배를 채웠다.
일탈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가 싶었는데 좀 놀아본 친구 한 명이 '칵테일'을 먹어보자고 제안했다. '칵테일'은 그나마 약한 술이라 들었다고 했다. 다시 메뉴판을 받은 후 주류 페이지에서 칵테일을 골랐다. 들어본 적도 없는 칵테일 이름이 가득했다. 그때 한 친구가 '후루츠 칵케일'을 먹어본 적이 있다며 아는 척을 했다. 우린 일제히 반가운 얼굴을 하며 너도 나도 후르츠 칵테일을 시켜보자고 했다. 긴장, 초조, 기대하는 마음으로 칵테일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잘생긴 오빠가 예쁜 잔에 칵테일을 담아 왔다. 이름도 예쁜 후르츠 칵테일은 어떤 맛일까?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잔에 입술을 살짝 대었다. 달콤했다. 달콤하기만 했다. 뭐지? 이것은 그냥 말 그대로 '후르츠 칵테일'이었다. 순수한 과일 혼합이었던 것이다. 맛을 보고 난 후 우린 일제히 깔깔깔 웃었다. 웃음과 함께 긴장감도 날아가고 기대도 날아가 버렸다. 시험에 대한 부담감과 일탈에 대한 두려움이 모두 한방에 날아가 버렸다. 그 후로 우리는 모두 고등학교에 무사히 진학을 했으며 고등학교 생활을 무사히 마쳤다. 백일주의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어렸을 때 후르츠 칵테일의 단맛을 보았기 때문일까? 그 후로도 나는 작은 일탈을 해왔다. 출근하기 싫은 날 연차를 내고 바다에 가거나,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피아노를 배우러 다니고, 주말에는 며칠밤을 세워서 영화를 보는 것 등의 작은 일탈을 했다. 작은 일탈로 일상의 긴장과 피로를 해소하며 스스로를 돌보았다. 그리고 대출금을 껴안고도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는 대형 일탈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 뒤로는 일탈은 멈추지 않았다. 인문학을 전공했지만 IT회사에서 일했고, 일반 회사원에서 미술치료사가 되었다. 전공도 바꾸었고 직업도 바꾸었다. 과거의 이력에 한계를 두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일탈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일탈은 문제행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일탈이 반복되어 경향성을 가지게 되면 그것은 창조가 된다. 예술작품이 그러하듯 삶에서도 규범이나 관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을 가지려는 시도를 통해 새로움이 창조된다.
돌이켜 보면 나의 일탈은 '진정한 나'로 향하간다는 경향성을 지닌다. '나'의 한계에서 한 걸음씩 '일탈'하여 '나'를 확장하고 싶다. '나'를 너머 '너'의 곁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고 싶다. 이것이 어렵고 긴장되는 일이더라도, 혹은 해프닝으로 끝날지라도 삶으로부터 '후르츠 칵테일'처럼 유쾌한 기쁨을 선물 받고 싶다. 원하던 그것이 아니어도 웃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