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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반짝 Jun 07. 2022

북경의 5월은 학생들이 들어 올린 횃불로 빛난다

최근 북경대 완류 기숙사에서 발생한 학생 시위의 전말과 그 파급효과

  북경대학교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학교 캠퍼스(燕园小区)에서 버스로 약 20분 거리에 있는 완류 기숙사(北京大学万柳公寓)에서 지난 5월 15일 밤에 일어난 일이다.


지도에서 A 구역이 학교 캠퍼스이고 B 구역이 완류 기숙사이다. (지도 출처=구글 맵스)


  여러 정보를 종합해 북경대 완류 시위의 전말을 재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5월 15일 밤 8~9시 무렵 갑자기 완류 기숙사 단지 내에 철판으로 벽을 세우기 시작했다. 사진을 보니 내가 살고 있는 기숙사 중관신원(中关新园)에 5월 12일에 세운 것과 같은 벽이었다. 아래 사진은 중관신원에 세워진 벽이고, 동영상은 중관신원에서 벽을 세우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5월 15일 밤에 완류 기숙사에 벽을 세울 때에도 이와 유사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5월 12일 밤 9시경 북경대학교 중관신원 기숙사 둘레에 세워진 철벽 (사진 출처=직접 촬영)


5월 12일 밤 9시경 북경대 중관신원 기숙사에 벽을 세우고 있는 모습 (영상 출처=직접 촬영)


  5월 12일 밤 중관신원과 15일 밤 완류 기숙사에 벽을 세운 목적은 바로 '학생들과 사회인을 분리시키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최근 북경시 코로나 방역 정책의 일환이었다. 학생들을 철벽 안에 넣어놓고 안전하게(?) 지켜주겠다는 것이다. 다행히 중관신원의 경우에는 철벽 안으로 학생들이 배드민턴을 치거나 러닝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좁지 않은 공터가 있었고 편의점도 갖추어져 있었다. 반면 완류의 경우에는 학생들의 생활공간과 편의시설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래 지도를 살펴보자. 우선 첫 번째 지도에서 표시한 지역이 완류 기숙사 단지이다.


붉은색 선으로 표시된 구역이 완류 기숙사 단지 (지도 출처=구글 맵스)


  시위 영상 및 사진과 완류에 사는 친구들의 증언을 토대로 철벽을 세우려 했던 위치를 유추해 그려 보면 아래 지도와 같다.


시위에 관한 정보와 사진을 토대로 철벽을 세우려 했던 지점을 유추해 보았다. (지도 출처=구글 맵스)


  철벽을 설치하게 되면 학생들이 사는 A 지역에는 편의시설이 학생식당 하나만 남게 된다. 이발소, 택배함과 같은 시설은 교직원과 그 가족들이 사는 B지역에 남게 된다. 따라서 학생들은 이발소와 택배함을, 교직원 및 가족은 식당을 이용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화원(지도에서 가운데 반원형의 지역) 또한 반으로 나눠지는데, 이렇게 되면 가뜩이나 공간이 부족한 학생들은 더욱 높아진 인구밀도에 시달리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위의 도화선이 된 것은 학생과 교직원에게 달리 적용되는 출입 규칙이었다. 당시 교직원들은 비록 학교에는 출입할 수 없지만 학교 밖은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반면 학생들은 학교에는 출입할 수 있으나 학교 밖으로는 나갈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학교라도 마음대로 갈 수 있어야 하는데, 완류 기숙사의 학생들은 학교조차 자유롭게 갈 수가 없었다. 완류 기숙사는 학교 캠퍼스에서 버스로 20분 거리에 있다. 현재 북경시 방역정책에는 학생들을 사회와 분리시키는 것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완류에 사는 학생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학교에 올 수 없었다. 오직 완류 안에서 출발해 학교 캠퍼스 안에서 내리고, 학교 캠퍼스 안에서 탑승해 완류 안에서 내리는 왕복 학교 버스, 반쳐(班车)를 타야지만 학교에 올 수 있었다. 문제는 이 반쳐가 하루에 수용 가능한 인원이 완류 전체 학생 수 3,000여 명 중 10%인 하루 300여 명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매일 반쳐 탑승 신청을 위한 경쟁이 일어났다. 반쳐 탑승권을 얻지 못한 대다수의 학생들은 그 날 하루 종일 좁은 완류 기숙사 안에 갇혀있어야 했다.


↑ 15일 밤 완류 기숙사 시위 모습을 담은 사진들. 누군가 위챗 펑요췬(微信朋友圈, 한국으로 치면 카카오톡 페이지나 페이스북 같은 기능)에 올린 것이다. 완류 기숙사를 두 군데로 쪼개버리려 했던 벽을 ‘베를린 장벽’으로 묘사하고 이를 무너뜨린 학생들을 ‘역시 북경대 학생들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사진 출처=온라인)


  완류의 학생들은 이처럼 5월 초부터 강화된 방역 정책으로 인해 완류 단지 안에 갇혀있다시피 했다. 그런데 학교 측은 15일 밤에 완류 가운데에 벽을 추가로 세우려 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생활할 공간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사실에 다급함과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이에 15일 밤 10시 반 정도가 되자 이미 기숙사 1층 건물 밖에 수백여 명의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보도에 따르면 최소 300여 명이었다고 한다. 첫 번째 학교 관계자가 나타나 확성기를 들고 학생들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10시 40분 무렵 두 번째 학교 관계자(친구에게 전해 듣기로는 북경대 부교장 왕보王博 였다고 한다)가 나타나 학생들을 진정시키려 했다. 그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나는 여기서 떠나지 않겠다!”라고 외쳤지만 학생들 중 누군가가 “우리도 여기를 떠날 수가 없다고요!”라고 외치며 응수했다. 바로 이때 학교 관계자의 뒤쪽에서 철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아래 동영상에 이 장면도 촬영되어 있다. 학교 관계자는 다시 학생들에게 “핸드폰을 좀 내려놓고 북경대를 지켜달라”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아무도 핸드폰을 내려놓거나 촬영을 멈추지 않았다. 도리어 일부 학생들은 “그럼 우리는 누가 지켜주는데요?”라고 반박했다.


2022년 5월 15일 북경대 완류 기숙사 시위 현장을 담은 동영상 (영상 출처=유튜브)


  결국 학교 관계자가 해결에 협조하기로 하자 학생들은 해산했다. 그날 새벽 늦게까지 학생 대표가 학생들의 불만 사항을 전달했다고 한다. 완류 기숙사를 두 구역으로 나누려 했던 철벽은 곧 철거되었고 학교 측은 다시 벽을 세우려 하지 않았다. 시위 다음날인 16일에는 곧 <코로나 방역 기간 완류 학구 운영 관리 조정 관련 조치  >(关于调整疫情防控期间万柳学区运行管理的相关举措)라는 대응책을 발표했다. 하루에 반쳐를 타고 학교 캠퍼스를 오갈 수 있는 인원을 완류 거주 학생의 30%에 해당하는 900명으로 늘리는 조치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나는 완류 기숙사에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부당한 조치 앞에서 참지 않고 목소리를 낸 완류 학생들에게 깊이 감사한다. 왜냐하면 완류 학생 시위 이후 학교 측이 학생들의 처우를 개선해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생활 환경을 어느 정도 뒷받침해 주기 위해 노력을 기울히고 있는데 이는 북경시 내 다른 대학들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예를 들어 5월 22일 북경시 정부는 ‘학교 식당에서도 식당 내 취식 금지’ 조치를 발표했다. 북경대는 이 조치를 아주 엄격하게 시행하거나 감시하지 않았다. 북경대 학생들은 하나의 테이블에 서로 마주 보고 앉지만 않으면 식당 안에서도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게다가 학생들이 정말 멀찍이 잘 떨어져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지 감시하서나 단속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며칠이 지나자 학생들이 나란히 앉지 못하도록 식당 의자에 붙여놓은 테이프도 떨어져 버렸다(혹은 학생들이 떼어버렸는지도).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밥을 먹는 등 평소와 다를 바가 없어졌다.


  또한 북경대는 학생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에도 큰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그동안 북경시 정부는 사람들의 지역 간 이동을 다소 제한하고 있었다. 북경대는 학생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하거나, 돌아가도 된다고 공지를 한 것은 아니다. 그저 고향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을 못 본 체 눈감아 주었다. 북경대의 이러한 분위기는 북경 내 다른 학교들과 사뭇 다른 것이었다. 나중에 북경 내 다른 대학교에서도 학생들의 시위와 반발이 일어났는데 그 주요 원인은 바로 학생들의 귀성을 막았기 때문이다. 학교 캠퍼스 안에만 갇혀 지내야 하며 수업도 온라인으로 진행한다면 대부분의 중국인 학생들은 집에 돌아가는 게 훨씬 낫다. 중국인 기숙사는 대개 두 명에서 여섯 명이 한 방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화장실과 샤워실도 각 방이 아니라 한 층에 하나씩 갖춰져 있는 경우가 많다. 혹은 기숙사 밖에 샤워실 건물이 따로 있다. 이런 환경에서 갇혀 지내느니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 온라인 수업을 듣는게 백배 천배 낫다. 그런데 그것을 특별한 이유도 없이(혹은 '과학 방역'이라는 이유로) 돌아가지 못하게 막는다면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이 시위 이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


북경사범대학교 학생들이 5월 24일에 기말고사 방식과 시간, 방학 기간과 귀경 가능 여부 등을 확실히 할 것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왼쪽=시위 포스터, 오른쪽=시위 현장

 

  그리고 우리 국제관계 학원(한국으로 치면 단과대학)의 경우 5월 24일 밤 9시경에 학원 관계자 선생님 두 분이 외국인 학생 기숙사인 중관신원에 찾아오시기도 했다. 우리에게 마스크를 나눠주고 “혹시 불편한 것은 없느냐? 잘 지내고 있느냐?”같은 것을 물어보셨다. 현재 중국에 마스크가 부족하지는 않다. 따라서 마스크를 주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아마도 학생들과 소통을 강화하고 불만을 제때 파악하려는 것이 주요한 목적이 아니었을까?


  여기까지가 지난 5월 15일에 일어난 북경대학교 완류 기숙사 시위의 전말과 그 영향이다. 다만 이 시위에 어떤 의미 부여를 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북경대는 한국의 3.1 운동과 비견되는 민중 운동인 1919년 5.4 운동의 진원지이다. 또한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북경대학교 내부의 시선으로 보기에 이번 완류 시위와 이러한 역사가 긴밀한 관련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번 시위에는 어떤 목적이나 신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조직화된 일련의 학생들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시위 현수막 같이 시위대의 요구사항을 보여줄 도구가 준비되지도 않았다. 학생들은 자신의 생활이 직접적으로 위협받고 있기에 그 순간에 반사적으로 모여서 항의를 했을 뿐이다. 이번 완류 기숙사 시위의 가치를 평가절하 할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이번 시위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는 색안경이 되어 사건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데에 방해가 될 뿐이라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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