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쓰는 충하 Apr 11. 2024

느린 여행-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을 사랑하기로 했다.

짧고도 긴 시(時)선

 살다보면 계획대로 되지 않아 머리가 하얘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MBTI 검사에서 항상 J가 나오는 나로서는 그런 상황은 정말 공포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삶은 항상 인간을 시련에 들게한다.


 낙오. 혼자서 떠난 여행이었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일. 제주도 수학여행 2일차, 우도에서 나는 그런 상황에 놓일지 정말 꿈에서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간과한 것이 있다면 학생들과 함께 움직인다는 것 단 하나였다.

 오전에 성산일출봉 등반을 무사히 마무리하고 두문포항으로 이동한 우리는 예약해 둔 배편으로 우도에 입도했다. 학생들이 스스로 우도를 여행하도록 미리 안내했던 우리들은 하우목동포구에서 돌아와야 하는 시간을 공지한 뒤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그날 우도는 맑은 날씨, 반짝이는 바다.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선생님들과 함께 짬뽕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후식으로 우도 땅콩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리고서 부장님, 역사 선생님과 함께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던 산호해수욕장에서 휴식을 취했다. 우리처럼 휴식을 위해 그곳을 들린 학생들과 사진도 찍고, 바다에 발을 적시기도 하며(여분의 양말이 없었던 나는 들어가지 않았다.) 시간을 보냈다. 

 조금 일찍 다시 돌아온 하우목동포구에서 학생들이 집합 시간까지 모두 모이기를 기다렸다. 한 반 한 반 학생들은 저마다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와 담임 선생님과 함께 선착장에서 돌아가기 위한 배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그런데 우리 반과 다른 한 반의 학생 몇 명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 반 실장 한 명이 그 보이지 않는 학생들 중 하나였기에 즉시 전화를 했다. 버스를 탔는데, 아직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는 대답.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최대한 빠르게 오라는 말 밖에는 없었다. 학생들은 시간 내에 도착하지 못했고, 배는 출발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만 타는 배가 아니었기에 출발을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반 담임 선생님과 함께 낙오할 수밖에 없었다.

 당황스럽고, 식은땀이 나고, 대책이 서지 않는 순간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학생들이 빠르게 오기를 기다리면서 총무 선생님과 연락을 취해 방안을 마련해 보는 것밖에 없었다. 학생들은 배가 떠난 뒤 몇 분 지나지 않아 헐레벌떡 도착했다. 연신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어찌된 일인지 설명했다. 나만큼이나 본인들도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무사히 돌아왔으면 됐다고 다독여만 줄 수도 있었지만, 선생님이란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럴 수만은 없었다. 이동 계획을 세울 때 이런 상황도 고려해 여유롭게 시간을 잡았어야 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우리로 인해 전체 학생들의 이동 시간에 차질이 생겼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하게 말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죄송한 마음에 다들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다행히 다음에 출발하는 배를 타고 돌아오면 된다는 총무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제주도로 복귀하는 배를 탈 수 있었다. 배에 오르니 그래도 큰 지연 없이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고 사라졌던 여유가 조금 돌아왔다. 그제야 아이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배에 올라서도 우리 반 아이들은 죄송함이 가득했다. 맞은 편에 앉으신 어르신들께서 심각한 표정의 우리들을 발견하고 왜 그러고 있냐고 물으셨다. 우리 반 실장이 사연을 소상히 읊었고, 어르신들은 여행이란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그런 것 아니겠냐고 위로를 건네셨다. 힘들어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되니, 본인들도 그 추억의 일부로 기억해달라는 당부와 함께.



그래. 여행은 그런 것이다.      


 사실 지금 돌아보면 낙오를 했던 그 순간도 정말 아무것도 아닌, 여행 속에 발생할 수 있는 아주 사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을 그토록 당황스럽고 두렵게 만든 것은 그런 경험이 전혀 없었던 나의 조급했던 마음이었다.

 아마 지금의 내가 다시 그날 하우목동포구에 서서 다시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낙오가 된다면, 나는 당황스러움과 두려움보단 어쩌면 나보다 더 놀라고 더 죄송스러웠을 아이들의 마음을 더 다독여 줄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때 후발대로 배에 올라탄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조금 더 자상하지 못했어서. 조금 더 여유롭지 못했어서.     


그래서,

쉽지는 않겠지만 조금씩이라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들을 사랑해 가기로 했다.


지나고 나면 모두 추억이 될 테니.     


그날의 모든 것들이 내게 추억의 일부로 남은 것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갈림길 -어떤 선택이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