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록 촬영회 (Tromso, Norway)
사진 촬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안전이다. 다행스럽게도 북유럽 여러 나라를 다니며 다양한 상황에서 촬영을 하면서 곰이나 늑대같이 사람에게 위협이 될만한 동물은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하긴 그 눈밭에 걔들이 뭐 먹을 게 있겠냐마는. 거기에 먹을 게 있는 녀석이 하나 있다. 바로 순록이다. 순록은 한 겨울에도 눈을 파헤쳐 바위 사이에 낀 이끼를 먹는다고 한다. 그 녀석들(한 번도 혼자 있는 적은 없었다)과는 여러 번 마주쳤는데, 대부분 사람을 피해 산으로, 숲으로 달아났다. 설피 같은 발바닥을 가지고도 단단하게 다져진 길을 좋아해서 차가 드문 북유럽에서는 찻길로 이동한다. 재밌는 사실은 이들 모두 주인이 있다는 점이다. 겨울철 방목의 끝판왕을 보고 싶다면 북유럽으로 가보시길.
트롬쇠의 안쪽을 구석구석 누비며 사진을 찍던 우리는 순록 농장을 발견했다. 주인 없는 농장에는 울타리가 있긴 하지만 저렇게 입구를 크게 열어 풀어둘 거면 울타리가 무슨 소용인가 싶을 정도였다. 몇몇 관광객들이 차를 세우고 먼발치에서 순록을 구경하고 있는데, 대장이 성큼성큼 순록을 향해 갔다. 눈 속에 다리가 푹푹 빠지는 모양이 심상치 않았는데 알고 보니 땅이 아닌 얼어붙은 호수였다. 물이 스며들었는지 ‘앗 차거.’ 소리를 내면서도 순록을 향해 가는 대장. 나는 한 걸음 (오십 걸음은 더 되지만) 떨어져서 그걸 보고만 있었다. 일정 내내 괴롭힌 무릎통증 때문이다. 더구나 제법 자란 순록의 뿔은 멋들어지게 길고 위협적이어서 저러다 순록이 들이받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것도 있다.
잠시 찍으려는 대장과 경계하는 순록 사이의 묘한 대치상황이 지속됐다. 녀석은 잠시 대장을 응시하며 촬영에 응하는 듯 머뭇거리다가 무리가 있는 울타리 쪽으로 향했다. 들이받지 않은 걸 보니 묘하게 안심 됐다. 천천히 울타리를 향해가니 구경하던 관광객 몇몇도 따라서 들어가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람들을 경계했는데, 대략 3미터 정도의 거리까지는 곁을 내어줬다. 그간 도로에서 만났던 녀석들과는 달랐다. 잔잔하게 내리던 눈은 갑자기 휘몰아치는 바람과 함께 거의 옆으로 내렸다. 생각보다 기온이 따뜻해서 부딪히는 눈에 얼굴이 따가웠다.
순록 또한 삼삼오오 모여 앉아 눈이 오는 반대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쉬었다. 천천히 카메라를 들고 풍경과 함께 녀석들을 담았다. 촬영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 멤버들의 순록 촬영회장이 돼버렸다. 보정작업을 위해 파일을 열었을 때 알았다. 그토록 순한 눈을 가져서 순록인가 보다. 자라난 뿔은 하나만 있는 녀석도 있고, 열심히 나무에 긁어댔는지 핏물이 어린 녀석도 있었다. 제 머리의 세배는 넘게 자란 뿔을 이고 다니다니 보고만 있어도 목디스크에 걸릴 것 같았다. 삼십여분이 지났을까. 차 몇 대가 더 주차하며 다가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순록 촬영회를 마무리할 때가 됐다. 이러다 목장 주인이라도 오면 난리 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