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이 빚어낸 구름
여러 날동안 눈길을 질주하니 차창이 얼어붙었다. 내림 버튼을 누르면 드드득 거릴 뿐 열리지 않았다.
트렁크 손잡이에도 고드름이 달리고 번호판은 흩날린 눈에 얼어붙어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래도 4륜에 마일드하이브리드,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에어서프펜션을 장착한 볼보는 징 박힌 윈터타이어만으로 끄떡없이 시속 80~100킬로미터의 속도로 안정적으로 나아갔다.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의 도로에는 길 가에 2미터 남짓한 붉은 막대를 듬성듬성 꽂아놨다. 도로의 경계와 쌓인 눈의 높이를 가늠하기 위함이다. 제 아무리 좋은 차라도 이 경계부근을 무시하고 들어갔다간 타이어가 파묻혀 버려 꼼짝없이 조난될 수 있다. 수시로 차에서 내려 촬영하더라도 경계를 주의했다.
핀란드에서 다시 노르웨이로 달려가는 길. 돌아가는 일정을 계산해서 노르웨이 트롬쇠로 향하는 중이다. 대략 700킬로미터 정도의 눈길을 한 번에 넘어가기로 한다. 극야의 오후 1시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는 중이다. 아침, 점심이 그 답지 않으니 비타민D를 챙겨 먹어도 쌓여가는 피로는 어쩔 수 없었다. 코와 광대는 바셀린을 발라줘도 발갛게 홍조를 띠었고 처음의 기세와는 달리 말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왼쪽에 손톱 같은 초승달이 뜨고 오른쪽엔 뉘엿뉘엿 지는 태양으로 노을이 지고 있다. 이 둘이 가까이 붙어있다니 북극권이라 가능한 풍경이기도 하다. 가도 가도 끝없이 눈밭을 가던 중 언덕 아래로 이어진 저 멀리 관목숲 사잇길로 노란 안개구름이 끼었다. 높은 산도 아닌데. 하늘을 보니 구름이 이상하다. 웬걸 구름 속에 무지개가 떴다.
폴라 클라우드(학명 : 극성층권구름 polar stratospheric clouds)다! 핀란드 스키장의 새벽에 넓게 펴진 이 구름을 처음 봤다. 그런데 이번에는 물고기 모양으로 붓 하나에 색색의 물감을 찍어 실처럼 흩트려놓은 것 같은 구름이다. 하늘이 붉은색과 보랏빛으로 물들고 구름은 점점 짙어지며 채도를 더했다. 멀리 있던 안개는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들이 어우러지니 다년간 북유럽의 풍경을 담아 온 대장도 처음 보는 광경이라며 연신 감탄했다. 핀란드의 어느 휴게소 식당에서 술에 잔뜩 취한 젊은 녀석이 툭툭 던진 질문도 너희들이 포토그래퍼라면 노던라이트(오로라) 봤니? 그럼 폴라클라우드는? 이었다. 그도 이런 풍경을 봤을까? 아마 다시 만나 되물어도 술에 절어 대답을 기대하게 힘들었을 것 같다. 혹한의 추위에 하늘에 떠다니는 얼음결정과 빛이 만나면 보이는 무지개 구름이라니! 북극권의 하늘은 참으로 경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