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없다고? (Yllasjarvi, Finland)
빛이 없으면 사진을 담을 수가 없다. 야간에 사진 찍기가 꺼려지는 이유다.
겨울밤 문 닫은 주유소는 함박눈이 내리는 와중에도 조명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대개 간판불 정도만 켜 놓을 텐데 모든 조명이 환했다.
문득 육지에 등대가 있다면 이곳이 적격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구글맵이 아무리 잘 되어 있다한들 완벽할 수 없고, 민가가 드문 눈의 바다에 환한 주유소의 불빛은 반가운 이정표가 될 것이다.
주유소에는 정비소와 타이어 판매점 그리고 제법 규모가 큰 마트가 함께 있었다.
휴게소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한참을 주유소 주변에서 서성대던 우리에게 저 멀리까지 나아간 대장이 소리친다.
“다들 거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이 쪽으로 오세요!”
‘빛은 여기 다 모여있는데? 왜?’
“주유소의 반사된 빛을 받는 곳이 어디까지인지 확인해 보세요!”
편견이었다.
어두운 곳이라 해도 빛은 있었다. 빛의 밝기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서 멀어질수록 급격히 어두워진다.
주유소로부터 떨어진 곳은 당연히 어두웠지만 어둠에 적응된 눈은 작게 반사된 빛이 나무와 쌓인 눈의 질감의 차이를 알아챘다. 눈밭과 나무사이에 홀로 떨어져 있는 집, 가로등, 길을 낸 흔적들은 잔잔하고 묵직하게 눈처럼 앉았다.
셔터스피드를 줄이고, 감도를 끌어올리고, 조리개를 최대한 열어 수동으로 초점을 맞추고는 숨을 참아 셔터를 눌렀다. 대충 봐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이 날의 풍경도 그랬다. 시간을 들여 세심하게 바라보니 보이지 않던 디테일이 보였고, 뒤늦은 깨달음과 함께 함박눈 속의 오묘한 풍경을 담을 수 있었다. 비싼 카메라는 제 기능을 다했다. 빛이 적은 상황에서 삼각대 없이도 낮은 셔터스피드를 충분히 버텨내어 그 정취를 담아냈으니 말이다. 비니 위로 눈이 가득 쌓여갔지만 춥지 않았다.
우린 이곳을 두 번, 아니 세 번 찾았다. 마트에서 장을 보던 날, 이 날처럼 눈발 가득 날리던 날, 시리게 차가운 밤하늘이 활짝 드러난 날. 빼곡히 눈 덮인 나뭇가지는 주유소와 마트의 빛을 받아 쏟아질 것 같은 별빛과 함께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줬다. 그날들의 하늘과 공기가 청량한 나무냄새로 각인됐다. 이때 찍은 사진들을 폰 대문 사진으로 설정해 돌려쓰는 중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핀란드에 다시 갈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눈이 펑펑 내리는 한 겨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