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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남매아빠 Oct 17. 2023

나의 북유럽 사진 여행기 #6

크리스마스가 되면 생각날까?

성탄절이 되면 아버지는 용돈 오천 원을 주셨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산타클로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고 성탄절은 공휴일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티브이에서 나오는 특선영화를 보고 눈이 오면 골목길로 나아가 식은 연탄재를 심지 삼아 눈사람을 만들었다. 산타클로스는 붉은 옷을 입은 흰 수염의 인상 좋은 할아버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실존한다면 그 많은 선물을 언제 다 돌릴까 궁금하기는 했다. 관심 밖에 있던 산타클로스의 기원이 핀란드 라는걸 이곳에 와서야 생각났다. 남극에는 곰이 없고, 북극에 펭귄이 살지 않는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았으니 새삼 놀랄 일은 아니었다.

핀란드가 그의 고향인 것을 알게 된 후부터 주변을 스치는 눈 덮인 나무들이 크고 작은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보였다. 종교를 믿지 않아도 성탄절의 따뜻하고 즐거운 감흥은 남아있었다. 친구들과 눈사람을 만들며 놀던 일, 아버지가 주신 거금으로 문방구의 모든 걸 살 수 있을 것 같은 풍성함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신에 대한 믿음이 없는 내게도 산타 할아버지는 정겨운 편이었다. 우뚝 솟은 삼각형 모양의 나무들은 큰아이가 어릴 적 좋아하던 뽀로로 마을의 나무와 같았다. 그런 관목숲길을 뚫고 한참을 이동해서 우리의 다음 목적지인 핀란드 키틸래에 도착했다. 숙소는 매우 중요했다. 나름의 숙소를 정하는 기준이 있었는데 방의 개수, 무료 와이파이, 무료주차, 코지한 분위기 등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숙소는 북유럽 여정 중 머물렀던 숙소 가운데 가장 넓고 좋았다. 공동현관 출입문을 열 줄 몰라 잠깐 헤매긴 했지만 숙소에 들어선 우리는 얼굴에 수분팩을 붙이고 그대로 잠들어버릴 만큼 피로가 누적됐다. 아침마다 온갖 영양제로 무장하고 길을 나섰지만, 새벽부터 이동하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5분 대기조처럼 촬영을 위해 움직였기에 누적된 피로는 상당했다. 어떤 날은 차에서 백 번은 더 내린 것 같다.

숙소인 스키리조트는 산의 경사면을 따라 몇 개 동이 있고, 리조트 우측 편에는 상가를 끼고 곤돌라 승강장이 있다. 산을 끼고 만든 콘도는 지형을 따라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꽤나 자연 친화적인 구조였다. 일단 깎고 부수고 보는 우리나라와는 달랐다. 땅덩이가 넓어서 그래라고 할 수 있지만, 도로에 염화칼슘을 뿌리는 대신 스키를 타고 스파이크 타이어를 장착한 차량으로 교통을 대신하는 것만 봐도 자연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1인당 2만 원 남짓의 곤돌라 왕복 티켓을 끊고 스키어들에 섞여 탑승을 시작했다. 대부분 가족단위에 어린아이들도 많았다. 실로 오랜만의 관광모드였다. 곤돌라 내부의 쪽창을 열어 밖을 보니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흰 눈으로 가득한 산이 내려앉았다. 길고 넓은 슬로프를 한 사람씩만 타고 내려온다. 두어 번 밖에 경험하지 못했지만 한국의 스키장은 누구와 부딪힐까 봐 조마조마하고 위험천만한(?) 내리막이었는데 한 사람씩 내려오는 스키장이라니! 북유럽을 찾는 스키어들이라면 꼭 들러보길 권하고 싶다.  

산에 오르니 가운데에 카페를 겸한 대피소와 곤돌라 정거장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마저도 온통 눈으로 뒤덮여 본연의 색깔을 알 수 없었다. 영하 25도가 넘는 추위와 산의 바람이 만나니 몸을 가누기가 어려웠다. 바라클라바 위에 비니를 덧쓰고 두꺼운 패딩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스키장을 돌아봤다. 스키어들은 친구와 가족들의 응원을 받으며 한 명씩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석양인 듯 떠오르는 햇빛과 바람이 만나 눈보라를 일으킨다. 해를 마주한 사람들은 움직이는 실루엣이 되어 한 곳으로 향했다. 고글과 마스크로 가렸지만 즐거운 표정을 숨길수는 없었다. 햇살이 비치는 반대편으로 나가보니 산 아래부터 지평선 끝까지 빽빽한 관목숲이 가득했다. 한때 유행하던 매직아이의 패턴을 보는 것처럼 밀도가 높아 어딘가에 숨겨놓은 글자나 숫자가 있을것 같았다. 띄엄띄엄 보이는 숲의 경계선으로 도로와 지형의 높낮이를 짐작할 뿐이었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거친 바람이 몰아치는 정상과는 달리 내려다 보이는 숲의 평야는 미동이 없는 것 같았다. 광풍과 고요함이 공존하는 미묘한 순간이었다. 위치가 바뀌어도 산 정상이 고요해 보일까? 문득 한국으로 돌아가 첫 성탄절이 되면 이 날이 기억날까도 궁금해졌다. 산타클로스, 눈, 핀란드, 바람 그리고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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