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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남매아빠 Oct 16. 2023

나의 북유럽 사진 여행기 #5

세상에나 바다도 언대 (Sweden)

일정은 늘 빠듯했다. 한정된 시간에 보다 많은 풍경을 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짬을 내어 조금의 여유와 낭만을 기대해 보지만 쉽지 않았다. 스웨덴의 키루나, 룰레오를 거쳐 키탈리에 도착한 우리는 60년이 넘은 통나무집에서의 숙박을 마무리하고 핀란드로 넘어가기로 결정했다. 창 밖이 온통 핑크빛이다. 노을은 대기 중의 먼지와 빛이 만나 붉게 타오르는 법인데, 청량한 대기 때문인지 이곳의 하늘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누룽지, 마트에서 산 파운드케잌 그리고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잠시 동네를 산책했다. 목장 울타리 너머 두어 마리의 말이 보인다. 우수에 찬 눈 빛, 무심하게 털어낸 듯 한 머리칼, 그리고 이와 대조적인 짧은 다리를 가진 녀석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적갈색 털을 가진 녀석이 차가운 공기 속에서 뿜어내는 입김은 아침햇살과 어우러져 생생하고 밝은 기운을 전해줬다. 몇 컷의 사진을 찍고 고드름이 잔뜩 들러붙은 트렁크를 열어 짐을 마저 싣는다.   

"가는 길에 발트해에 들렀다 갈까요?" 운전석의 대장이 말한다.

발트해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북유럽, 동유럽, 중앙유럽 그리고 덴마크의 섬들로 둘러싸인 북유럽의 바다라고 한다. 구글맵에 표시된 발트해 연안에 다다랐지만 눈을 씻고 돌아봐도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관찰은 경탄으로 이어졌다. 얼어붙은 너른 평원이 바로 바다였기 때문이다. 바다도 언다. 후에 알게 됐지만 수심이 얕은 발트해 연안의 염도가 낮아 혹한의 겨울에는 강처럼 얼어붙는다고 한다. 

심플하고 세련된 파스텔톤의 오두막이 있다. 현관에 달린 창문은 원형이다.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3국의 겨울을 헤집고 다녔지만 스웨덴의 디자인이 가장 세련된 것 같았다. 오두막의 도로 연결로는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넓이만큼 제설한 흔적 위로 눈이 쌓여 아름다운 두 갈래의 곡선을 그렸다. 그 너머로 펼쳐진 넓은 눈밭은 저 멀리 보이는 작은 보트선착장으로 이곳이 바다라는 것을 말해준다. 핑크빛으로 노을 진 하늘에 소복이 쌓인 지상의 눈이 그 빛을 반사했다. 그야말로 동화 같은 풍경이다. 

들어 올릴 때마다 쑤시는 무릎을 부여잡고 한 걸음 한 걸음 바닷가로 향한다. 드문드문 선 나무들이 육지와 해안선의 경계를 보여주고, 눈을 비집고 나온 갈대와 눈의 입자는 아침 햇살을 맞아 금칠한 듯 반짝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허벅지만큼 쌓이는 눈밭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맞이한 풍경은 그날의 공기, 햇살, 바람, 땀냄새, 통증. 입김과 함께 온몸으로 각인된다. 제 아무리 좋은 디스플레이라도 감히 담을 수 없는 감동이다. 그날의 발트해의 풍경은 글을 쓰는 지금 8월의 열대야에 더욱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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