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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남매아빠 Oct 14. 2023

나의 북유럽 사진 여행기 #4

노던 라이트 (Kiruna, Sweden)


회사에서 만났지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마음 맞는 형이 있다. 몇 년 전 모 방송사에서 방송을 위한 캐나다 옐로나이프로의 오로라 여행 참가자를 공모한 적이 있었는데 형은 거기에 당첨됐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일상을 잠시 뒤로하고 함께 오로라 여행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때 형이 작성한 오로라 여행기와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는 마치 직접 경험하는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노르웨이 북부의 트롬쇠에서 여정을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따뜻해진 기온에 이곳의 일정을 일찌감치 접고 스웨덴으로 향했다. 기온이 따뜻해져 쌓인 눈이 녹아 우리가 목표로 하는 깨끗한 풍경을 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시간을 이동했을까 하얗게 눈 덮인 나무가 많아지면서 주변의 검은색은 점점 자취를 감췄다.

한참을 달려 국경에 다다랐다. 살면서 국경을 넘는 일은 처음이라 나도 모르게 안 주머니의 여권을 만지작 거렸지만 꺼낼 일이 없었다. 국경은 수비대나 경찰, 바리케이드 같은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그저 높이 게양된 양국의 국기만으로 보이지 않는 선을 그었다. 내가 생각했던 국경은 이게 아닌데.  

날이 어두워지고 나서야(그래봐야 오후 4시) 스웨덴 키루나에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여장을 풀고 허기를 달랜 우리는 밤 12시가 되어 열린 하늘을 확인했다. 광각 단렌즈와 망원렌즈, 삼각대를 챙겨 다시 길을 나섰다. 삼십여분을 달렸을까? 운전하던 대장이 창을 열어 하늘을 보고 외친다.

“오로라다!”

노르웨이 센야섬에서는 그 빛의 끝자락만 볼 수 있었는데, 기후정보를 통해 시간단위로 예측하는 대장의 선견지명으로 마침내 제대로 피어난 Northern lights를 마주했다. (여담이지만 보름간의 여정 중 오로라에 대한 대장의 예측은 적중률 100% 였다. 이 쯤되면 대장을 만난 게 천운이 아닌가 싶다.) 길 한켠에 차를 대고 삼각대를 꺼냈다. 하늘을 물들인 초록 빛이 지면의 눈에 반사되어 땅조차도 은은한 녹색이 됐다. 사진을 배우고 달라진 점은 예민해진 눈이다. 배운 것을 온전히 흡수하진 못했어도, 빛과 색, 질감, 그림자를 자세히 살피려 노력한다. 이전의 나라면 오로라 빛에 반사된 녹색빛 눈을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반적인 촬영으로는 오로라를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 방송에 나오는 오로라는 타입랩스 같은 고도의 기술과 치밀하게 계산된 노력의 결과물이다. 지구와 우주가 교감하는 경이로운 순간들은 결코 캔디드 촬영처럼 스치듯 찍어 옮길 수 있을 만큼 녹록지 않다.

빛은 점점 진한 녹색빛을 발하며 땅의 이 끝에서 무지개처럼 피어올라 저 먼 땅 끝으로 이어졌다. 오로라 폭풍만큼 강하지 않지만 하늘하늘 커튼자락을 휘날리며 녹색 바탕에, 붉은색, 노란색을 풀어 춤을 춘다. 몇 컷을 담고 난 후 인근의 지도를 확인하여 다시 물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깊이 쌓인 눈에 삼각대를 꽂아 넣어야 하기에 혹한의 날씨에서는 다리를 접더라도 잠그지 않는다. 차 내외부의 기온차로 순식간에 얼어붙어 정작 필요할 때 다리를 펼칠 수 없기 때문이다. 엊그제 고장 났던 볼헤드에 무척이나 민감했기에 온 신경이 삼각대에 집중됐다. 인적 없는 작은 다리에 도착해, 반쯤 얼어붙은 강과 자작나무 숲을 중심으로 오로라를 담기 시작했다. 카메라 액정에 잔상이 어릴 정도로 추웠다. 잠깐 차에서 머물다 나온 카메라 표면에는 살얼음이 어릴 정도니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것에 감사해야 했다. 주머니 속에 미리 터뜨려 둔 핫팩으로 시린 손을 달래지만, 발가락은 답이 없었다. 군시절 경계근무를 설 때처럼 뒤꿈치를 계속 부딪히며 둔감해진 발의 통증을 없애려 발가락을 연신 움직였지만 은은한 통증을 동반한 가려움증과 함께 감각은 점점 무뎌져갔다. 이때의 기온은 영하 25도였다.

오로라는 너른 팬 붓으로 녹색 형광물감을 찍어 때로는 넓게 때로는 세로로 세워 촘촘히 그려내며 적막한 밤을 밝혔다. 우리들의 숨소리, 카메라 삼각대를 조작하는 작동음 외에 흐르는 물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온다.

"와!" 단말마의 탄성을 연발하며 표현할 단어조차 찾지 못했다. 시간이 정지된 듯 고요했고, 손발이 시린데도 포근하고 찬란했다. 제대로 된 오로라를 처음 마주하는 감흥은 쉽게 말로 풀어내기 어렵지만, 그때 느낀 감정을 한 단어로 축약하면 '위로'였다. 평탄한 인생을 꿈꾸면서도 꾸역꾸역 떠밀려 이어온 삶에 대해 "고생했어, 그리고 잘 왔어."라고 환하고 담담하게 건네는 인사 같았다. 이후에도 우리는 수차례 오로라를 관측할 수 있었지만 이 날 밤의 오로라가 내 인생의 Northern Lights로 각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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