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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중 May 02. 2021

검도. 보이지 않는 과학

- 나의 부끄러운 검도 이야기

 우연한 기회에 다니던 대학의 은사님이 하시던 검도 도장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이 어언 십 여년 전이다. 그때는 아직 팔팔하고 건방이 하늘을 찌르던 20대 후반이었다. 이제껏 어느 운동이든 진득이 해본 일이 없어서 큰맘 먹고 시작한 운동이었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도장에 나가지는 못했지만 직장을 다니면서도 여러 가지 다른 일을 하면서도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으면서도 운동을 그만두지는 않았다. 그렇게 운동에 몸을 담게 되자 나도 실력이 조금씩 쌓여 갔다. 완전 초보에 검도가 무엇인지도 칼을 어떻게 잡는지도 몰랐던 시간이 지나 운이 좋게 초단에 입문하고 2단을 따고, 또 몇 년의 고생과 속상한 낙방 끝에 얼마 전에는 3단을 따게 되었다. 

  검도는 사실 3단부터 시작이라는 말이 있다. 많은 젊은이들과 대학생이 검도를 열심히 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3단을 따게 되면 일반적으로 무도인이 되어 각종 공무원이나 특히 경찰직, 교정직 등의 채용에 가산점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이미 직장을 가진 뒤라 전혀 해당이 없었지만 3단을 따기까지 부단히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비슷한 시기에 운동을 시작한 동료 선후배들 중에는 벌써 4단도 있고 4단을 딴 뒤에 다시 자격 테스트를 해서 받을 수 있는 ‘사범’ 자격증을 가진 젊은 동료도 있기 때문에 크게 동기유발이자 자극이 되었다. 나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4단도 따고 사범도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가장 컸다.

  과학에 대하여 깊은 지식이 있는 게 아니라서 사실 검도가 과학적으로 어떤 원리이며 어떤 좋은 점과 숨은 과학 지식을 갖고 있는지 잘 모른다. 단지 수치적으로 검도에 사용하는 칼인 죽도의 무게가 약 550그램으로 고기 한 근 정도의 무게라고 한다. 가볍다면 가볍고 무겁다면 무거울 수 있는 무게인데 이게 참 묘한 것이 한 손으로 들기엔 과하게 무겁고 두 손으로 들면 적당히 가볍다. 그래서 두 손으로 잡고 팔과 손에 힘을 빼고 가볍게 움직이며 상대를 치는 경기인데 실전은 이론과 다를 때가 많아 막상 상대와 마주 서면 어깨, 팔, 손 등 전부 힘이 들어가 몸이 천근만근이 된다. 이미 내 얼굴과 머리를 감싸고 있는 가면 같은 보호구의 무게와 압박감에 짓눌려 마치 방독면을 쓰고 달리기를 하는 듯한 상태인데 몸까지 무거우니 정말 기진맥진이다. 그렇게 내 몸 하나 운신을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반복해서 보내면 희한하게도 호면도 마치 또 하나의 얼굴인 양 착 붙고, 죽도도 어느 순간 가볍게 느껴져 내 몸의 일부, 손의 연장선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은 모든 운동이 그렇겠지만 이른바 ‘일만 시간의 법칙’이 만들어 내는 통달의 과정일 것이다.

  검도는 죽도의 움직임이 원심력을 따르고, 특히 상대의 칼보다 내가 먼저 상대에게 닿기 위해서는 적절한 거리가 가장 중요하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신체의 키와 팔다리의 길이, 거기에 죽도를 더한 적절한 수학적 거리를 찾아 공격해도 상대는 맞지 않고 나만 맞을 때가 있다. 바로 검도를 지배하는 모든 과학의 가장 위에 있는 ‘눈’ 때문이다. 상대의 움직임을 보는 눈, 움직임을 넘어 마음까지 읽는 눈에 읽히게 되면 당할 수밖에 없다.

  오늘도 퇴근 후에 어김 없이 도장을 향한다. 과학의 원리 아래 운동을 하지만 때로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승패를 결정짓는 기묘한 시간을 체험하는 쾌감에 중독되어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과학을 좇는 검도인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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