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벅, 너 참 대다나다
몇 년 전부터 커피숍은 스타벅스로 천하통일되었다. 어느 순간 바퀴베네이던 것들이 사라지고 엔제리너스, 할리스 이런 영어 이름들도 점점 안 보였다. 시나브로 커피는 스타벅스가 된 것이다. 그 배경에 커피는 스타벅스, 왜냐하면 쿠폰으로 먹으니까라는 대중 자본주의가 한 몫을 했다. 전 세계 1위 기호식품이며 한국인 후식 국룰인 커피는 스벅을 안고 날았다. 커피는 스벅에서 먹는 것이고 그것도 기프티콘으로 먹는 것이 되었다.
그런데 이게 문제였다. 어디서나 스벅 커피 기프티콘을 마구 뿌려대서 필부필부인 나도 폰에 수시로 그것이 쌓였다. 그런데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이게 롯데리아나 맘스터치나 파리바게뜨 것은 알뜰살뜰히 챙겨서 요긴하게 식량으로 바꾸었는데 커피는 내가 먹지 못하니 필요가 없다. 쿠폰의 90%는 아메리카노였는데 4100원짜리 아메리카노는 스벅에서 제일 싼 것 중 하나였고 나처럼 커피를 먹지 않는 사람은 혼돈의 카오스 같은 스벅 메뉴에서 커피가 아닌 것을 찾아내기도 어려웠다.(프라푸치노도 커피였다니! 그렇다고 고구마 라떼를 그돈 주고 먹으란 말이냐!)
게다가 커피가 아닌 메뉴는 무조건 아메리카노보다 비쌌다! 녹차라떼를 먹기 위해서는 무조건 5천원 이상을 내야 한다. 공짜로 받은 쿠폰 하나 쓰겠다고 내 돈 더 얹어서 굳이 음료를 사 마실 필요가 없지 않은가. 자연히 스벅 쿠폰은 폰에서 유통기한을 조용히 넘겨 스러져갔다. 무척 아까웠다. 커피를 먹는 지인들에게 보내주기도 하고 일행과 함께 가면 보태서 쓰는 용도는 있었지만 여기저기서 날짜도 제각각인 것을 받다 보니 십중팔구는 결국 방심의 틈바구니에 깔려 힘을 쓰지 못하고 수명을 다했다. 생각했다. 주최측은 가만히 앉아서 쿠폰 주고 생색내고는 안 쓴 돈 다시 고스란히 빼먹는구나. 완전 김선달 아닌가. 나 같은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닐 것이다. 커피 즐기는 사람 많지만 반대로 커피 안 먹는 사람도 꽤나 있다. 아메리카노 4100원 안고 다시 천 원 정도 더 보태서 일부러 스벅을 찾아가 아이스티나 녹차라떼를 먹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냥 쿠폰이 녹는 거지. 그렇게 사장된 쿠폰을 바탕으로 스벅은 나날이 성장했다. 모든 커피는 스벅으로 통한다.
그런데 어느 날 스벅에서 유레카를 하고야 말았다. 어? 스벅에 빵 파네? 그렇다. 스벅은 커피숍이니 당연히 조각케익를 비롯한 디저트 빵이나 과자류를 판다. 갑자기 통빡이 빨라졌다. 어? 그러면 커피쿠폰으로 빵도 살 수 있는 거네? 이 단순한 진리를 여태 몰랐던고! (김동인의 ‘태형’이 떠오른다.) 등잔 밑이 어두운 나를 탓하며 무릎을 탁 쳤다. 커피숍이니까 여자들 취향인 조각케익 밖에 없을 거라는 고정관념이 사라지자 안 보이던 빵이 보였다. 스벅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무난하고 부담 없는 빵인 크림 카스테라는 4500원이다. 아메리카노 쿠폰은 현금 4100원과 똑같다. 스벅 메뉴 안에서만. 그러니까 계산을 무식하게 하면 400원만 더 내면 빵을 하나 사게 되는 것이다. 파리바게뜨는 말할 것도 없고 폭탄세일 마트에도 500원짜리 빵도 잘 없는데, 스벅에서 이 고급진 럭셔리 디저트를 400원에 건져올리는 것이다. 할렐루야! 이 단순한 발견의 정착 이후 내 폰에서는 스벅 쿠폰이 녹지 않는다. 날짜를 칼 같이 지켜 따박따박 빵을 사오게 되었다. 스벅의 대명사인 아메리카노는 4100원이며 빵은 4500원이라는 것은 진짜 얄미울 정도로 똑똑한 용진이형의 꼼수 같다. 그러니까 커피 그냥 안 먹고 딴 거, 특히 마시는 거 말고 빵이라도 하나 먹으려면 돈 더 내란 거지.
스벅은 가만히 앉아서 쿠폰이 아니면 절대 오지 않을 고객을 유치하고 공돈 400원도 더 뜯어가는 장사를 한다. 그런데 소비자 입장에서도 큰 손해가 없다. 이왕 공짜로 받은 쿠폰에 400원 더 내고 빵 받으면 남는 장사 아닌가. 이런 기가 막힌 윈윈 덕에 나는 자주 스벅의 생크림 카스테라를 먹는다. 맛있다. 그래도 명색이 스벅인데 빵맛이 없겠나. 게다가 이제는 점차 빵 냉장고에 눈이 익숙해져 이것저것 보다보니 카스테라나 케익 말고 생각보다 다양한 빵이 있다. 샌드위치, 케밥, 치킨브리또 등 식사 대용 빵류가 종류도 다양하다. 대부분 5~6천원이라 비싸지만 이것 역시 그냥 사면 비싸지만(카드 결제로 샌드위치 하나가 6천원? 허걱!) 쿠폰에 보태서 사면 겨우 2천원 이하로 한 끼 식사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쿠폰은 공짜라는 심리를 이용한 교묘한 폭리형 판매지만 역시 소비자는 별 손해보는 느낌이 없다. 2천원 주고 샌드위치를 어디 가서 먹어? 더한 놈은 카페라떼다. 카페라떼는 4600원쯤 된다. 빵을 하나 사고도 100원이 남네? 이거 완전 사기캐다. 이 족쇄 같은 100원 때문에 심지어 빵을 하다 더 산다! 그냥 그 100원 버리기 괜히 아깝다. 점원도 100원 남으니 더 고르라고 한다. 그놈의 100원. 카페라떼 두 잔 세트 쿠폰이면 더하다. 빵 두 개 사고 200원 남는데 또 사야 돼? 할 수 없이 비싸기로 악명 높은 예쁜 쓰레기 급인 스벅 초콜렛을 집어든다. 이건 저주의 반복이다.
스벅은 영리했다. 어디에서든 커피 쿠폰을 주면 팔 할은 스벅이다. 넘쳐나는 SNS 이벤트의 십중팔구는 스벅 쿠폰을 준다. 쿠폰으로 마시는 커피, 커피를 즐기지 않는 자라도 스벅에서 즐길 것은 많다. 그대 쿠폰이 있는가? 십중팔구 돈을 더 쓰기 위해 스벅에 갈지니. 앉아서 편안하게 노트북도 할 수 있는 카공족은 당연히 스벅의 단골이겠지만 스벅이 뭔지도 모르는데 어디서 이벤트 하나 당첨됐다고 허구한 날 쿠폰이 날아드는 전국민의 70% 이상도 스벅에 갈 수밖에 없다. 스벅은 하루빨리 쿠폰을 수수료로 떼고 현금으로 되돌려주는 깡을 허하라! 자본주의 한 번 말아먹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