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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주 Jan 29. 2021

쌔고 쌨는 95년생 중 1인입니다만?

아- 71만 분의 1 확률로 살아가기도 하죠. 


71만 명 중 하나일 뿐이자, 71만 분의 1 확률로 존재하는 단 하나. 


<응답하라 2002>가 나온다면 이전 시리즈들과 마찬가지로 재미는 있어도 딱히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응답하라 2010> 정도 나온다고 하면, 

아마 그건 95년생들을 위한 것이겠지. 




피쳐폰과 스마트폰의 격변기를 겪고, 동방신기와 슈퍼주니어, ws501 단 세 개의 팬덤이 아이돌을 사랑하는 여성들의 95%를 차지하는 인기 독점을 지켜봤고, 결말은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는 <꽃보다 남자>를 보기 위해 야자가 끝난 뒤 뛰어가곤 했다. 추억의 PMP나 캐논 영어사전에 귀여니, 왕기대를 필두로 하는 인터넷 소설을 넣어 보기도 했었다. (여자로서 여중과 여고를 나왔기에 이와 관련된 경험을 사례로 씀에 미리 양해 바란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95년생은 약 71만 명이라고 한다. 
출생신고가 늦거나, 누락된 경우를 포함하면 웃돌지 않을까 싶다.
물론 몰랐다. 내 세계에는 오직 나만 존재했을 뿐이니까. 



내 기억이 시작하던 시절로 돌아가 보자면 나는 슈퍼 언빌리버블 다재다능 꼬마였다. 

배움이 빨랐고, 승부욕도 있었다. 예체능에 두루 능해 학년 상장 개수 1등에게 주는 (이걸 상장으로 준다;)을 꼭꼭 받았다. 전교 1등은 아니었지만 공부도 잘했다. 순위권이었다. 엄마는 칭찬했고, 어른들은 좋아했으며 친구들은 부러워했다. 


뭐든지 잘할 것 같던 이 완벽했던 꼬맹이는 중학교 1학년 입학 전, 행렬을 예습하며 무너진다. 

그러나 '아니 나 진짜 뭐든 잘했는데?'라는 완벽주의는 꽤 오래갔고, 이상 예체능에 뛰어난 두각도 보이지 못하며, 전교 40등을 넘어가는 학업 점수를 기록한 뒤에는 이상한 쪽으로 기질을 보였다. 

가령 '나만 아는 가수'에 집착했고, 또래와 다른 어른스러움을 지녔음에 우쭐했다. 우등생은 아니지만 모범생 컨셉을 잡아 선생님께 혼나는 참지 못했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가슴 아픈 감정 소모를 하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더 이상 핫샷 디바가 아니라는 사실에 점점 수긍(?)했다. 중학교 친구들을 멀리하고 덩그러니 공립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는데, 사실 적응하는데 힘들기는 했다(울컥). 학교폭력과 친근감의 사이에 놓인 당시 상처.. 아픔.. 어쩌고들을 구구절절 털어놓자면 아마 한편 있을 것이다. 


가장 크게 기억 남는 사건이 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국어시간에 지금의 나보다 어린 여자 선생님이 '박경리 작가가 쓴 작품이 뭐냐'라고 물었고, 나는 '김약국의 딸들'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는 곧바로 냉소를 지으며 '저렇게 튀려는 애들이 꼭 있지'라고 첨언했다. 

오우 정말 그때의 부끄러움은 아직도 소름돋게 생생하다. 

어쩌면 나는 '어머나 흔해 빠진 토지가 아닌 그런 재야의 작품을 말하는 똑똑이가 여기 있다니~'라는 칭찬을 바랐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 것도 처음이었지만, 맞는 말이라서 나에게 더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cool하게 넘길 정도로 cool 하지도 않았다. 


이런 환경들이 쌓여 디바가 아니라는 북극에서 정확히 남극으로 이동해 '진짜 존재 가치가 없구나'라는 자기혐오에 빠진다.  




완벽주의와 자기혐오의 틀 안에 갇혀 허우적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도 어지중간한 4년제 인문학과를 갔다. 이미 졸업까지 마당. 점수 맞춰 간 거 아니라고 소리치지만 사실 맞다.


대학 가서는 한 번 하는 것도 절레절레라는 과 CC를 좀 많이 했다.

학교 5년 다니며 한 6번 정도 했나? 

와 씨 쟤 진짜 멋있다(비웃음이 섞인)류의 얘기를 듣긴 했지만 그 경험이 남들이 나에게 고개를 조아릴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진 않았다. 


그리고 졸업 후 인턴이니 사회생활이니 이런저런 경험치를 쌓은 -현재 백수- 27살의 나는 문뜩 그런 생각을 한다. 세상에 하나뿐인 부모님과 친구, 내가 오직 나만의 것으로 그려온 경험과 발자취. 

완벽주의든 자기혐오든 오랫동안 이뤄온 나에 대한 고민. 모든 것이 아름답고 특별하지만, 

사실 그렇게 막 미친 듯이 고민하고 미워하며 힘들어도 되지 않을 만큼 특별하진 않다고. 

왜? 95년 생은 71만 명에 육박하니까! 

그리고 나는 그중 하나일 뿐이니까. 


그렇게 내가 특별하지 않음을 깨달은 순간 나를 구속하고 있던 이상한 구속은 마법처럼 풀려난다. 

아, 나는, 71만 분의 1의 특별한 아이이면서도, 71만 명 중 한명일뿐이구나.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제 쫄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거 맘껏 하고 살아도 되겠는걸? 

누가 제 그림을 눈여겨보겠습니까? (있다면 감사합니다.) 마음대로 그려 보겠습니다. 



발에 채는 71만 명 중 하나이기에, 어쩌면 회사에서 나 말고 다른 사람을 뽑을 수는 있겠지만 

나는 그 자체로 소중한 71만 분의 1이기에 나를 하찮게 대할 권리는 그대에게 없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거절하고 반박해주겠다.  


5년 차 간호사도, 7년 차 무직도, 대학원 졸업반도, 의대생도, 4년 차 직장인도, 잘 나가는 연예인도, 대기업 대리도, 3년 차 공무원도, 2년 차 백수도, 졸업을 곧 앞둔 4학년도, 자영업을 시작한 청년 사장도, 소년소녀가장도,  

어떤 형태로 누구나 있을 수 있는 95년생들 사이, 

1인을 맡고 있다는 것에  자랑스러우면서도 지극히 평범한 오늘을 살아가는 27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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