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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Apr 21. 2021

엄마가 되다

엄마의 첫 원더윅스


"40주가 지났는데 양수가 5 이하로 내려가면 유도분만을 권해요."


주치의의 조언에 유도분만을 택했다. 촉진제를 맞고 16시간 진통을 겪었지만 아이의 머리는 아래로 내려올 생각을 안했고, 내딴엔 힘을 준다고 줬는데 의사와 간호사는 "산모님 힘을 더 주세요"라고 계속 재촉했다. 결국 생각치도 않았던 제왕절개로 쮸니를 만났다.


임신기간 내내 남편은 내게 "널 봐온 10여년 중 제일행복해보여"라고 이야기 하곤 했었다. 정말 그랬다. 애타게 기다렸던 아이였고, 임신카페 '맘스홀릭'을 하루에도 수십번 들락날락하며 거의 준 산부인과 수준급의 임신 지식을 꿰찰 정도로 임신 과정을 즐겼다.


배를 가르고 쮸니가 나와 울음소리를 냈을때 나도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만큼 엄마가 된것이 기뻤다. 그런 내게 첫 위기가 온것은 수유실에 쮸니의 첫 모유수유를 시도하러 내려갔을때였다. 임신까진 공부가 많이 됐는데 출산 이후 육아는 젬병이였다. 돌이켜보니 전혀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모유가 나오지 않았다. 주변 산모들은 척 하니 잘도 먹이는데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간호사가 젖병을 주며 분유를 먹이라고 했다. 젖병을 물리자 쮸니는 불편한듯 울었다. 그때 첫 공포감이 몰려왔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아기를 낳으면 모성애는 절로 생기는줄 알았다. 그토록 기다린 아이였기에 모성애가 폭발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에게 미안하게도 모성애란 단어가 그닥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모성애보다 '내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난 엄마가 될 준비가 됐던걸까' 스스로를 채찍하느라 바빴다. 손에는 주렁주렁 링거줄이 달렸고 아이 젖병하나 제대로 물리지 못했다. 주변 산모들이 나를 쳐다보는거 같았다. 간호사에게 쮸니를 급히 넘기고 나오면서 한없이 울었다.  "난 엄마로서 빵점이구나"


그날밤, 신생아실에서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아이가 황달기도 좀 있고, 산소포화도가 낮아져서 치료에 들어갑니다. 당분간 황달기도 있으니 모유수유는 안하시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의사의 말을 남편이 전해줬다. 아까 내가 제대로 분유도 못줘서 아이가 그런건 아닐까 괜한 죄책감이 몰려와 그날밤은 거의 울며 지샜다. "난 엄마가 될 준비가 너무 안됐구나...."


그때부터 산후우울증이 조금씩 밀려왔던것 같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났고, 겁이 났다. 아이는 엄마보다 하루 늦게 퇴원했다. 조리원에 들어가선 다른 산모들과 달리 TV도 안보고 육아카페에 들어가 모유수유만 검색했다. 먼저 엄마가 된 동료들에게 이것저것 카톡으로 물어봤고 걱정은 나날이 늘어만 갔다. 돌이켜보면 호르몬탓도 있었지만, 엄마가 돼 가는 과정이였던것 같다. 내가 겪은 엄마의 첫 원더윅스였다.





얼마전 아이를 낳은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난 모성애가 없나봐" 수화기너머 친구의 이야기에 나의 첫 원더윅스 기간이 떠올랐다.


"우리도 엄마는 처음이잖아. 낯설고 겁나고 그런건 당연해. 그런감정을 느낀다는것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전제가 깔려있는거야. 그러니 괜찮아. 백일만 지나봐. 아니 한달만 지나봐. 몸은 힘들어도 내가 내 새끼 때문에 산다는 말이 절로 나올껄? 우리는 다 그렇게 엄마가 되는거야. 앞으로도 너 몇번의 고난의 시기가 온다. 그리고 그걸 겪고 나면 너와 너의 딸의 모성애와 모정은 더 찐득하니 깊어지는거야"


내말에 친구는 "몰라. 모르겠어"라고만 반복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군간 겪었고 누군간 겪을 초보엄마의 첫 원더윅스. 그렇게 우린 엄마가 된다. 아이를 열달 품에 안고 있을때와는 또 다른 현실 엄마의 첫 발걸음. 쉽지 않지만 다들 너무 걱정하진 말라고 감히 조언하고싶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엄마는 더 성장할테니깐. 아이만 원더윅스가 있는게 아니다. 태어나 처음 엄마가 된 우리들도 나름의 원더윅스 과정을 겪으며 엄마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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